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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어디에?(예레미야 37:11~21)
설교자 김현준목사
본 문 예레미야 37:11~21
설교일 2020년9월27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0-09-26 조회수 102

 

어디에?

예레미야 37:11~21 (음성듣기)

 

왜 예레미야를 죽이지 않고 가둬두었을까?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바벨론 군대가 대열을 정비하기 위해 잠시 뒤로 물러난 사이 베냐민 지파 출신인 예레미야 선지자가 재산 상속을 받을 일이 생겨서 고향인 베냐민 땅을 방문하려다 예루살렘 성문인 베냐민 문에서 문지기에게 붙잡혔습니다. 문지기가 예레미야 선지자를 바벨론의 간첩으로 의심했습니다. 지금은 바벨론과 전쟁 중이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남유다의 관리들과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지 않고 웅덩이와 뒤뜰에 가둬두었습니다. 그들은 왜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지 않고 가둬두었을까요?

 

죽이지 못하는 것이다.

시드기야 왕과 고관들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죽이지 못하는 겁니다. 바벨론과 전쟁하고 있는데 적국인 바벨론에게 나라가 망할 것을 예언하고, 적국인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예언하는 예레미야를 죽여서 그 입을 막고 싶지만 하나님의 스피커가 되어 바벨론과 전쟁 중인 상황인데도 남유다 백성들 앞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바벨론에게 질 것이라고 선포하고, 바벨론에게 항복해야 한다고 선포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에 감히 죽이지 못하고 가둬두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가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웅덩이와 뒤뜰에 가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이고 다윗 왕의 자손인 시드기야 왕과 고관들이 이렇게 감히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웅덩이와 뒤뜰에 가두게 된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경외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이르아(יִרְאָה)”두려워하다. 존경하다. 두렵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행하다.”의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봐 두려워하고, 자비하고 선하신 하나님을 존경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바로 경외입니다. 시드기야 왕과 남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한 이 경외심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웅덩이와 뒤뜰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어디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혹시 시드기야 왕과 남유다의 관리들처럼 하나님을 구덩이나 뒤뜰에 가둬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코로나19 때문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 보니 아예 하나님을 잊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내 하나님을 웅덩이나 뒤뜰이 아니라 내 마음에 그리고 내 삶 속에 모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존경하고, 하나님 앞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경외심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코로나19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코로나19 이후의 변화된 세상 속에서도 강건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동 제한과 만남 제한 때문에 덜 움직이고 덜 만나는 이번 추석에 청파동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고 가족들과 더욱 친밀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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