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역대상 17장 1~15절)
(1) 다윗이 그의 궁전에 거주할 때에 다윗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나는 백향목 궁에 거주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아래에 있도다 (2) 나단이 다윗에게 아뢰되 하나님이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바를 모두 행하소서 (3) 그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4)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5)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올라오게 한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이 장막과 저 장막에 있으며 이 성막과 저 성막에 있었나니 (6) 이스라엘 무리와 더불어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사사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하고 (7) 또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 떼를 따라다니던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8)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 (9)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들을 심고 그들이 그 곳에 거주하면서 다시는 옮겨가지 아니하게 하며 악한 사람들에게 전과 같이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여 (10)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또 네 모든 대적으로 네게 복종하게 하리라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한 왕조를 세울지라 (11) 네 생명의 연한이 차서 네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면 내가 네 뒤에 네 씨 곧 네 아들 중 하나를 세우고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니 (12) 그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3)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나의 인자를 그에게서 빼앗지 아니하기를 내가 네 전에 있던 자에게서 빼앗음과 같이 하지 아니할 것이며 (14) 내가 영원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5) 나단이 이 모든 말씀과 이 모든 계시대로 다윗에게 전하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10월 1일 목요일입니다. 10월의 첫날입니다. 하나님께서 10월 한 달도 우리와 동행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역대상 17장 1절부터 15절까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운전할 때 주로 사용되는 것은 브레이크(제동장치)일까요, 액셀(가속장치)일까요? 운전자가 늘 발을 대고 있어야 하는 것은 바로 브레이크입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브레이크가 없다면 달릴 수 없고,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브레이크를 밟지 못한다면 운전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때 ‘예스(허락)’보다 중요한 것은 ‘노(거절)’입니다. ‘예스’가 있기에 ‘노’가 빛나는 법입니다. ‘노’가 없는 ‘예스’는 ‘예스’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요술램프 ‘지니’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에게는 ‘노’가 있고, 지니에게는 ‘노’가 없다는 것입니다.
시편 139편 12절은 매우 놀라운 영적 통찰(洞察)을 우리에게 줍니다.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하나님 안에서는 빛과 어둠이 다를 바 없듯, 하나님이 주시는 ‘예스’와 ‘노’의 응답 또한 그 가치가 같습니다. 우리는 흑암보다 빛을 원하고 ‘노’보다 ‘예스’를 기대하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노’ 역시 ‘예스’와 다름없는 완벽한 응답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기도에 ‘노’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고 서원하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을 기쁘게 받으시면서도 그의 요청은 ‘거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다윗의 서원을 거절하셨을까요? 왜 백향목으로 멋진 성전을 짓겠다는 다윗의 간구를 거절하셨을까요? 첫째, 하나님은 ‘성전에 거하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인간에게 ‘왜 나를 위해 성전을 짓지 않느냐, 어서 성전을 지어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언제든 이동할 수 있는 성막이나 언약궤와 달리 성전은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자유를 원하십니다. 훗날 솔로몬 역시 성전을 완성하고 헌당식을 드릴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수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제가 지은 이 성전이오리이까. 그러나 이곳을 향해 드리는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열왕기상 8장 27~30절)’ 성전이 하나님의 거처라 할지라도, 성전이라는 공간이 하나님을 통제하거나 가둘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웅장하고 아름다운 예배당을 지을지라도, 하나님이 오직 그곳에만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두 번째, 지금 성전을 지으려는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다윗은 볼품없는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수많은 목동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오직 다윗을 택하여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선택이 없었다면, 다윗은 여전히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왕이 되는 것은 감히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목동이라는 직업이 천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지 않으셨다면 지금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물론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왕위에 오른 후에도 끊임없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깊은 비통함 속에서 “하나님, 대체 어디 계십니까?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고 수없이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역대상 17장 8절)’ 이처럼 다윗의 인생은 단 한 순간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채워진 삶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왜 하나님은 다윗의 간구를 거절하셨을까요? ‘이 세상의 역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기 때문’입니다. 한번 따라서 해볼까요?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제가 하나님을 위하여 집(성전)을 짓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지금 하나님께서 ‘아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집(왕조)을 지어 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역사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위해 집을 세우실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을 통해 다윗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이 약속은 문자적으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가리키지만, 영적으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겠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우리는 ‘내가 없으면 이 교회는 큰일난다.’ ‘그 사람이 없으면 이 교회는 안 된다.’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물론 사람이 가장 귀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며, 교회의 사역만큼은 그 어떤 AI(Artificial Intelligence의 약자. 인간의 지능이 가지는 인식, 판단, 추론, 학습, 문제 해결 따위의 기능을 갖춘 인공지능)나 로봇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말과 행동은 하나님의 주권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시며, 당신의 능력으로 친히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교회가 위기에 빠진 것 같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염려해야 할 것은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 있는가?’ 하는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다 계획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분명한 뜻이 있으십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유한 웃지 못할 우화가 있습니다. 동물들이 왕을 세우기를 원했습니다. 기어다니는 짐승들은 ‘치타처럼 빠르지는 못하더라도 땅을 걸을 줄 알아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지는 못하더라도 날개가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돌고래처럼 민첩하지는 못하더라도 헤엄은 칠 줄 알아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저마다 자신들의 처지를 잘 이해해 줄 왕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왕이 뽑혔을까요? 그들이 오랜 치열한 논의 끝에 세운 왕은 안타깝게도 ‘오리’였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빛과 어둠이 같고, ‘예스(허락)’와 ‘노(거절)’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귀한 이유는 ‘노(거절)’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에 ‘노(거절)’라고 응답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역사의 주인은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세우실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오늘도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에게는 빛과 어둠이 같고, ‘예스’와 ‘노’가 같다고 오늘 말씀을 통해 배웠습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할 것을 믿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우리 모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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