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10월 8일(목)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대상 21:1~8)
    2026-10-07 16:51:06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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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회개가 답입니다. (역대상 21장 1~8절)

     

    (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2)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 내게 보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하니 (3)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4)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요압이 떠나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5)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이라 (6) 요압이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7)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8)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도 ‘좋은 날’ 오늘도 ‘복된 날’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역대상 21장 1절부터 8절까지입니다. <여전히 회개가 답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성경은 간혹 같은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으로 기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시험받으신 사건을 어떤 곳에서는 성령에 의해서, 또 다른 곳에서는 사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또한, 다윗이 인구조사로 범죄를 저지르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어떤 곳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기 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곳은 사탄이 다윗을 충동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과 사무엘하 24장의 내용입니다. 이 두 기록의 차이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선은 하나님의 주권과 허용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은 사탄의 모든 활동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고 말씀합니다. 욥기 1장에 잘 나타나듯이, 사탄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야만 활동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세상 모든 일을 허용하시고 계획하시는 주관자이시고, 사탄은 그 섭리 안에서 제한적으로 움직이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사탄도 하나님의 일꾼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다윗의 인구조사는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일이었고, 그 과정을 이루는 도구로 사탄이 사용된 것입니다. 물론 성경 저자는 여기서 사탄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사탄이 무슨 붉은 망토를 입고 시내를 걸어 다니는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미혹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넘어지기를 바라며 온갖 간교한 조언을 건네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순간, 그 사람이 사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군가가 내 마음을 충동질하고 있다면, 그것이 사탄의 역사임을 속히 알아차리고 거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를 절망에 빠지게 만들고, 공동체를 다툼과 분열로 이끄는 그 사람은 지금 사탄의 도구로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달아 그 사람을 미워하기보다, 오히려 그가 더 이상 사탄의 도구가 되지 않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기왕이면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쓰임 받아야지, 악한 도구로 쓰임 받는다면 나중에 얼마나 큰 자괴감을 느끼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조차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누구라도 방심하는 순간, 언제든지 사탄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사탄의 충동에 넘어가 요압과 군대 지도자들을 불러 ‘최남단 브엘세바에서 최북단 단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계수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로 말하면 ‘한라에서 백두까지’입니다. 이곳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세어보라고 명령합니다. 이에 대해 군대 장관 요압은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며 간곡하게 만류합니다. 충신으로서 이 일을 말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압은 다윗의 인구조사를 왜 그토록 만류했을까요?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역대상 27장 23절과 24절을 보면, 인구조사가 끝까지 완료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하늘의 별이나 바다의 모래를 사람이 셀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다윗이 백성의 수를 세라고 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그 놀라운 언약의 성취를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자기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 했던 불신앙을 뜻합니다.

     

    두 번째, 요압이 반대한 이유는 지금 시점에 인구조사를 해봐야 실익이 전혀 없다는 현실적 논리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군사력을 더 조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미 온 이스라엘을 통일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강대국들인 암몬, 아람, 블레셋까지 모두 평정하고 강력한 왕국을 이룬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인구조사가 왜 필요하냐고 항변하는 것입니다.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역대상 21장 3절)’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세 번째는 만약 다윗이 인구조사를 강행한다면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요압은 지금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역대상 21장 3절)’ 즉, 이 일은 단순히 왕 개인의 실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죄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은 지도자 한 사람이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 그 공동체와 백성들도 함께 죄에 빠지게 됨을 경고하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보다 먼저 멸망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왕들이 하나같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요압은 다윗의 인구조사를 강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인구조사를 하게 됩니다. 사무엘서는 그 기간이 무려 10개월이나 걸렸다고 말합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과는 역대상 21장 5절에 나오는데, 전체 인구는 110만, 그중에 유다는 47만이라는 결과를 얻습니다. 우리 주목해서 보아야 할 말씀은 7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라는 말씀입니다. 이 표현은 다윗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취했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사무엘하 11장 27절)’

     

    성도 여러분, 어제 우리가 묵상한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래도 감출 수는 없습니다’ 어제 역대기(歷代記)의 기자는 밧세바와 다윗의 간음 사건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경이 그 사건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몰라서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침묵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더 무섭지 않습니까? 이것이 더 소름 끼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의 죄를 책망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우리의 죄악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다 아시지만 말없이 참아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제 본문(역대상 20장 1~8절)에서 역대기의 기자는 침묵했지만, 오늘, 이 사건을 통해 다윗의 과거를 하나님께서 낱낱이 기억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구절인 역대상 21장 8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오늘의 본문은 이처럼 회개하는 다윗의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여전히 회개가 답입니다>라고 정했는데, 다윗의 진정한 위대함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회개할 줄 아는 것’입니다.

     

    회개는 새로운 삶을 여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우리가 앞서 에스라의 기도를 묵상하며 ‘함부로 회개 기도를 남발하지 말라! 처음부터 용서를 구하지 말라!’라고 배웠지만, 죄를 깨달았을 때 우리가 최종적으로 나아가야 할 자리는 바로 회개의 자리입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습니다.” 결국 이 진실한 고백이 우리를 살립니다. 교만한 사람은 끝까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웁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사람이 참으로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겸손히 회개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여전히 회개가 우리 삶의 열쇠임을 깨닫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바로 이 회개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함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우리 모든 청파동의 교우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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