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해석을 구분하라. (역대상 19장 8~19절)
(8) 다윗이 듣고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를 보냈더니 (9) 암몬 자손은 나가서 성문 앞에 진을 치고 도우러 온 여러 왕은 따로 들에 있더라 (10) 요압이 앞 뒤에 친 적진을 보고 이스라엘에서 뽑은 자 중에서 또 뽑아 아람 사람을 대하여 진을 치고 (11) 그 남은 무리는 그의 아우 아비새의 수하에 맡겨 암몬 자손을 대하여 진을 치게 하고 (12) 이르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도우리라 (13)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14) 요압과 그 추종자가 싸우려고 아람 사람 앞에 나아가니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고 (15) 암몬 자손은 아람 사람이 도망함을 보고 그들도 요압의 아우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간지라 이에 요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16) 아람 사람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사신을 보내 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을 불러내니 하닷에셀의 군대사령관 소박이 그들을 거느린지라 (17)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전하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요단을 건너 아람 사람에게 이르러 그들을 향하여 진을 치니라 다윗이 아람 사람을 향하여 진을 치매 그들이 다윗과 맞서 싸우더니 (18)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한지라 다윗이 아람 병거 칠천 대의 군사와 보병 사만 명을 죽이고 또 군대 지휘관 소박을 죽이매 (19) 하닷에셀의 부하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다윗과 더불어 화친하여 섬기고 그 후로는 아람 사람이 암몬 자손 돕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더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10월 6일 화요일입니다. 지난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오늘도 주안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역대상 19장 8절부터 19절까지입니다.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꿈보다 해몽이 중요하다! 신앙은 믿음으로 우리의 인생을 해석하는 것이다!’라고 지난 토요일 새벽기도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다니엘과 요셉이 훌륭한 이유는 올바른 해석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사단이 주는 부정적인 마음과 악한 생각으로 해석하지 말고, 사실에 근거하여 올바른 판단과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왕이 되었을 때 다윗은 선한 마음으로 사절단을 보내 문상했습니다. 다윗이 사절단을 보내 나하스의 죽음을 문상한 것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하지만 암몬의 왕 하눈은 이것을 어떻게 해석했습니까? 신하들의 말을 의지하여 다윗이 몰래 자신들의 나라를 정탐하기 위한 술수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신하들을 모욕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판단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본래 의도를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게 되고 암몬은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어떤 교회 입구에 이런 문구를 써놓습니다. ‘무단 주차금지! 외부 차량 절대 주차금지! 무단 주차 시 견인 조치!’ 반면, 어떤 교회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환영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차 시 연락처를 남겨주세요.’ 여러분, 처음 교회를 찾는 이의 마음에는 어느 교회가 더 따뜻하고 친근하게 다가올까요? 교회를 관리하는 이들에게는 질서 유지를 위한 경고가 필요하겠지만, ‘주차장에 들어온 외부 차량 한 대’를 바라보는 시선과 해석은 이처럼 교회마다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길을 가다 아는 분을 만났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크게 인사했지만, 그분은 못 본 척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이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나요? 일단은 기분이 많이 상할 것입니다. ‘어떻게 내가 인사했는데 그냥 지나칠 수 있지? 나를 무시하는 건가? 어디 두고 보자!’ 아마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하며 섭섭함과 분노를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인사를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시력이 안 좋으셔서 가까이서도 알아보지 못하셨나?’ ‘아니면 다른 깊은 생각에 잠겨 겨를이 없으셨던 걸까?’ 나중에 기회가 될 때 그분께 이렇게 다정하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길에서 반가워서 인사드렸는데 못 보고 지나치신 것 같더라고요. 혹시 그때 무슨 일 있으셨나요?” 한 번 더 상대를 배려해 묻는 태도만으로도 오해는 풀리고, 마음에 남았던 서운함은 눈 녹듯 사라지게 됩니다.
이처럼 소통은 어떤 ‘사실’에 대해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지난달 21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은 박재연 소장의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지금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 객관적 사실인지, 아니면 나의 주관적 해석인지를 분별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관계를 위한 첫걸음입니다. ‘아! 내가 지금 나만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어떤 사실에 대해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있구나!’ 이것을 인식하는 것부터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사실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해석과 판단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은 자신의 판단만이 옳은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해,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느끼는 것의 대부분은 사실이 아닌 ‘자의적 해석이나 오해’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레짐작하여 분노하고, 판단하고,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관적인 판단과 해석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 ‘내가 보지 못한 다른 단면이 있을 수 있다.’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무조건 ‘좋게 해석하라!’ 라거나 ‘긍정적으로만 살아라!’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해석은 해석대로’ 구별하여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상처받고 오해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역대상 19장 8~19절을 보면, 암몬은 자신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에도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상황을 더 크게 악화시키고 맙니다. 다윗을 찾아가 오해했다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끝날 일이었는데, 은 천 달란트라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아람의 군대를 동원한 것입니다. 암몬은 병거 3만 2천 대를 동원해(역대상 19장 6절) 아람과 강력한 연합군을 형성합니다. 이 정도 세력이면 다윗과 싸워 충분히 이길 수 있으리라 판단했던 것입니다(역대상 19장 7절).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일의 본문까지 모두 세 번의 전쟁을 치르는데, 모두 대패합니다. 오늘의 본문 8절부터 15절까지가 그 첫 번째 전쟁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군대 총사령관인 ‘요압’을 파견하고, 요압은 앞뒤로 협공해 오는 아람과 암몬 연합군에 맞서 싸웁니다.
함께 싸우는 동생 ‘아비새’를 격려하는 ‘요압’의 선언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12) 이르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도우리라 (13)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역대상 19장 12~13절)’ 군대 장관 ‘요압’의 입장에서도 이 전쟁은 참으로 황당하고 납득(納得)하기 어려운 싸움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요압’은 군대를 독려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의 결과는 허무할 정도로 싱겁게 끝나버립니다. 아람과 암몬 연합군이 제대로 겨뤄보지도 못한 채, 이스라엘의 군대 앞에서 전의를 잃고 도망쳐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에 요압도 더 이상 전쟁을 확대하지 않고 조용히 상황을 마무리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제2차 전쟁이 일어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두 번째 전쟁이 처음 싸움을 주도했던 암몬이 아니라, 용병으로 참전했던 아람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의 군대 앞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쳤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열을 단단히 가다듬고 다시 출전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한지라 다윗이 아람 병거 칠천 대의 군사와 보병 사만 명을 죽이고 또 군대 지휘관 소박을 죽이매 (역대상 19장 18절)’ 결과는 다윗 군대의 대승리였습니다. 이 패배로 인해 아람은 다시는 이스라엘과 싸우지 않기로 맹세하며, 결국 암몬과의 관계마저 완전히 끊어버립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전쟁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을 치를 아무런 명분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웃 나라에 조문(弔問)하려는 다윗의 선한 마음을 곡해한, 암몬 왕의 어리석은 판단 하나로 시작된 비극이었습니다. 사과 한마디면 쉽게 끝났을 일을 그는 사과는커녕 더 큰 악수를 두었고, 그 결과 나라 전체가 패가망신하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아람이라는 든든한 우방도 잃고 막대한 손실을 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판단’에서 비롯된 결과였습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순간순간 화가 나는 상황을 맞닥뜨립니다. 앞차가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은 채 갑자기 끼어들 때, 나의 소중한 물건을 누군가 허락 없이 썼을 때, 혹은 내 의견에 상대가 선뜻 동의하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분노를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이때 한 번쯤 상대방의 관점에서도 상황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나 급한 사정으로 미처 방향지시등도 켜지 못한 채 앞으로 끼어드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정말 피치 못할 사정으로 누군가가 내 물건을 허락 없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저마다의 사정과 이유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행동은 괜찮고, 남이 하는 행동은 절대로 안 된다’라는 이중적인 기준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똑같은 사실이라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180도 달라집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성숙한 우리 모두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10월 6일 아침, 저희를 깨워주시고 이 말씀을 묵상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라는 오늘의 말씀, 조금 어렵게 느껴지지만, 잘 이해함으로 더 이상 상처를 받거나 오해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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