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10월 5일(월)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대상 19:1~7)
    2026-10-04 19:10:21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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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의가 호의를 낳지 못할 때 (역대상 19장 1~7절)

     

    (1)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2) 다윗이 이르되 하눈의 아버지 나하스가 전에 내게 호의를 베풀었으니 이제 내가 그의 아들 하눈에게 호의를 베풀리라 하고 사절들을 보내서 그의 아버지 죽음을 문상하게 하니라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러 하눈에게 나아가 문상하매 (3)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문사절을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존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의 신하들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정탐하여 전복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는지라 (4) 하눈이 이에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을 깎고 그 의복을 볼기 중간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5)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가서 그 사람들이 당한 일을 말하니라 그 사람들이 심히 부끄러워하므로 다윗이 그들을 맞으러 보내 왕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6) 암몬 자손이 자기가 다윗에게 밉게 한 줄 안지라 하눈과 암몬 자손은 더불어 은 천 달란트를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마아가와 소바에 보내 병거와 마병을 삯 내되 (7) 곧 병거 삼만 이천 대와 마아가 왕과 그의 군대를 고용하였더니 그들이 와서 메드바 앞에 진 치매 암몬 자손이 그 모든 성읍으로부터 모여 와서 싸우려 한지라

     

    살면서 속이 상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성심껏 베푼 호의가 오히려 적대감으로 돌아올 때입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행한 행동들이 무시당하고 오히려 그 행동으로 인해 관계가 틀어진 경험을 해보신 적 있습니까?

     

    오늘 말씀에서 다윗은 암몬 자손의 선왕인 나하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조문 사절단을 보냅니다. 그러나 나하스의 뒤를 이은 아들 하눈은 다윗의 선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조문 사절단원들의 수염을 깎고, 의복을 볼기 중간까지 잘라내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다윗의 진심 어린 선의를 명백한 적대행위로 갚은 것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수염과 의복은 남성의 명예와 지위를 상징했습니다. 따라서 수염을 깎이는 것은 극심한 수치이자 남성성의 상실을 의미했습니다. 하눈이 왕의 권위를 대변하는 사절단에게 이런 모욕을 가한 것은, 결국 다윗 왕과 그 나라 전체를 향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선한 목적과 의도를 가진 행동이 항상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봉사하는 과정에서 다툼이 생기기도 하고, 공동체 안에서 선의로 행한 일이 오해로 돌아와 마음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이 다윗처럼 진심에서 우러나온 선의였다면, 눈앞의 결과에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하눈은 다윗의 선의를 의심하고 불신한 끝에 전쟁을 일으켰고, 결국 뼈아픈 패배를 겪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선의를 기억하시고, 그의 신하들이 겪은 수치를 친히 갚아주신 것입니다.

     

    성도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행한 모든 선의가 언제나 선한 열매로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바로 이러한 순간에도 자신의 마음을 지켜내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본문 중 역대상 19장 5절을 보면, 다윗은 하눈의 만행을 겪고도 즉시 감정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외교적 마찰을 확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수치를 당한 사절들이 여리고에 머물며 수염이 자라고 마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오늘, 역대기의 저자는 다윗의 이러한 따뜻한 배려를 세세하게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누군가를 섬기고 봉사하며, 선을 행할 때 우리 마음 한쪽에 선한 열매를 바랄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우리의 순수한 호의가 오해나 악으로 돌아올 때, 쉽게 낙심하고 분노하게 됩니다.

     

    여러분,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는 날카로운 도끼에 찍히거나 깊은 상처를 입으면, 당장 새 가지를 뻗으려 애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조용히 그 상처 부위로 맑은 송진을 흘려보냅니다. 송진으로 상처를 두껍게 덮어 병균의 침투를 막고, 스스로 아물 때까지 묵묵히 견뎌내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처럼 억울한 오해와 상처가 찾아올 때, 묵묵히 견디며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윗의 신하들이 수치를 씻어내며 회복을 기다렸던, 그 ‘여리고의 시간’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오늘 새벽, 이 기도의 자리가 바로 여러분의 ‘여리고’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 속에서, 혹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깎이고 상해버린 자존감과 상처받은 마음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품에 내려놓으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픔과 억울함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며, 소망의 기도로 나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다윗은 자신의 선의가 적대감과 모욕으로 돌아왔을 때, 조용히 여리고에서 회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여리고의 시간’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사람들이 내 마음을 몰라주고 억울한 순간을 지날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과정을 기억하시며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다윗 신하들의 그 ‘여리고의 시간’을 기억하시고 친히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 우리 성도들의 모든 선의가 칭찬과 선한 열매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말씀 붙잡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성도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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