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자는 결국 망합니다. (나훔 3장 12~19절)
(12) 네 모든 산성은 무화과나무의 처음 익은 열매가 흔들기만 하면 먹는 자의 입에 떨어짐과 같으리라 (13) 네 가운데 장정들은 여인 같고 네 땅의 성문들은 네 원수 앞에 넓게 열리고 빗장들은 불에 타도다 (14) 너는 물을 길어 에워싸일 것을 대비하며 너의 산성들을 견고하게 하며 진흙에 들어가서 흙을 밟아 벽돌 가마를 수리하라 (15) 거기서 불이 너를 삼키며 칼이 너를 베기를 느치가 먹는 것 같이 하리라 네가 느치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네가 메뚜기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16) 네가 네 상인을 하늘의 별보다 많게 하였으나 느치가 날개를 펴서 날아감과 같고 (17) 네 방백은 메뚜기 같고 너의 장수들은 큰 메뚜기 떼가 추운 날에는 울타리에 깃들였다가 해가 뜨면 날아감과 같으니 그 있는 곳을 알 수 없도다 (18)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 (19)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6월 30일 화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나훔 3장 12절부터 19절까지입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자는 결국 망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인생은 서로 주고받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은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고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 간에 서로 주고받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 균형이 깨지면 어떤 관계든지 유지되기가 어렵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스승과 제자 간에도, 목회자와 성도 간에도 모두 적용됩니다. 부부지간, 친구 사이, 동료관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물리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모두를 포함해서 서로 주고받는 것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주변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잘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 작은 한 번의 도움이 결정적인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나훔 3장 12~19절)은 나훔서의 마지막 결론으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왜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들이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의 이익만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할 때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오직 나만을 위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겉모습만 그리스도인일 뿐,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습니다. 복음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증거되어야 합니다. 왜 전도가 되지 않을까요? 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예수를 믿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이 화를 내고, 더 욕심을 부리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 이웃들을 더욱 친절하게 대하고 돕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 나훔 3장 12절과 13절은 그토록 견고한 니느웨 성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하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줍니다. 나훔 선지자는 난공불락의 산성 니느웨를 ‘흔들면 툭 하고 떨어지는 무화과나무’에 비유하며 니느웨 성은 많은 힘을 들일 필요도 없이 허무하게 무너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훔 3장 13절은 ‘그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나약한 여인들과 같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니느웨 성이 아무리 견고하고 그 성의 군사들이 강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면, 그들은 무참하게 망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실제로 이 예언의 말씀처럼 메대와 바벨론의 군사들이 쉽게 성안으로 진군하여 그 성을 불태우고, 그곳의 백성들을 무참하게 짓밟았습니다.
본문 나훔 3장 14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은 지도층의 이탈과 붕괴를 보여줍니다. 학교의 지도자는 선생님입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선생님은 끝까지 남아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국가의 지도자는 대통령과 위정자들입니다. 나라에 무슨 일이 생기면 대통령과 위정자들은 끝까지 남아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배의 지도자는 선장입니다. 배에 무슨 일이 생기면 선장은 끝까지 남아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교회의 리더는 당회장과 당회원들입니다. 교회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당회장과 당회원들은 끝까지 남아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먼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의 본문(나훔 3장 12~19절)은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하늘의 별처럼 많고 든든해 보였던 기득권층이 막상 환난의 때가 되자 자신의 안위만을 챙겨 흔적도 없이 도망쳐 버립니다. 끝까지 공동체의 중심을 견고히 잡고 있어야 지도자들이 오히려 백성들보다 먼저 사라졌던 것입니다. 평소의 지도자들은 그 역할이 크게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평소에는 지도자들의 역할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쳐왔을 때는 지도자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구성원들이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지도자들이 중심을 제대로 잡고 일사불란하게 지시해야 합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구성원이 있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입니다.
마지막 본문 나훔 3장 18절과 19절은 앗수르 제국의 최종적인 사망 선고입니다. 지도자를 뜻하는 ‘목자’와 ‘귀족’들이 자고 누워 쉰다는 것은 완전히 나라가 망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목자를 잃은 양들은 산으로 흩어지지만 아무도 그들을 불러 모으지 않습니다. 니느웨의 상처가 ‘고칠 수 없을 정도로 중하다’는 이제 이 나라가 완전히 끝났다는 선언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말씀입니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 (나훔 3장 19절)’ 보통은 한 나라가 망하면 주변에서 안타까워하거나 동정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앗수르의 멸망 소식을 들은 주변국들은 일제히 손뼉을 치며 기뻐했습니다. 그동안 앗수르가 행했던 잔인한 행동들 때문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앗수르는 주변 나라를 단 한 번이라도 도와주기는커녕 착취하고 빼앗고, 잔인하게 폭력을 행하며 괴롭혔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나라가 망했을 때 누가 안타까워하겠습니까?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은 그에 합당한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은 돈을 많이 번 만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어야 하고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은 권력을 많이 가진 만큼 주변 사람들을 잘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예인 중에 수십 년째 단 한 번의 추문(醜聞) 없이 정상의 자리에 서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스타가 되면 교만해져서 망하기가 쉬운데, 정말 이들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며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잘 베풀고 나누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는 존재입니다. 언제 어떻게 실수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세를 진 많은 사람이 고마움을 느끼고 도와주려 하니 설령 실수가 생길지라도 수습이 되는 것입니다. 즉, 평소에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면 결국은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아프거나 힘들 때, 또는 망했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평소에 내가 그들에게 어떻게 대했느냐에 따라 그 반응도 달라질 것입니다. 다시 말해 결정적인 순간에 누군가가 나를 배반했다면 “어떻게 나를 배반할 수가 있어?”라며 분통을 터뜨리기보다는 “평소에 내가 그를 잘 섬기지 못했구나!”라고 자숙하는 것이 더 좋다는 말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참된 신앙의 가치는 평안할 때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서 증명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와 사회는 너무나 어렵고, 불안하며, 모두가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신 것은 매우 중요한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앗수르가 망한 이유는 자기의 이익만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은 이웃들과 나누라고 주신 선물입니다. 여러분, 어려울 때일수록 주변을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서로를 섬기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려울 때일수록 주변을 돌아보고, 어려울 때일수록 은혜를 베풀고, 어려울 때일수록 다른 이를 돕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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