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기도할 뿐입니다. (시편 109편 1~16절)
(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2)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3)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4)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5)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6) 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 (7)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어 나오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시며 (8)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9)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10)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11) 고리대금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며 (12) 그에게 인애를 베풀 자가 없게 하시며 그의 고아에게 은혜를 베풀 자도 없게 하시며 (13) 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 (14) 여호와는 그의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의 어머니의 죄를 지워 버리지 마시고 (15)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그들의 기억을 땅에서 끊으소서 (16) 그가 인자를 베풀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니이다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7월 4일 토요일입니다. ‘온 가정 새벽기도회’로 모이는 날입니다. 7월 한 달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가정 가운데 충만히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09편 1절부터 16절까지입니다. <그러나 나는 기도할 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시편 109편 1~16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마음에 품게 되었습니다. 첫째,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나는 어떻게 하는가?’ 둘째,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 꾸준히 기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셋째, 그러므로 ‘기도는 대체 어떤 능력이 있는가?’ 기도는 고난 속을 걸어가는 우리 성도들이 반드시 붙잡아야 할 가장 강력하고도 유일한 무기입니다. 주님께서도 “오직 기도 외에는 다른 유익한 방법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함께 나누며, 오늘 주신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첫째,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나는 어떻게 하는가?’ 여러분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하십니까? 열심히 일하고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 때, 오히려 가해자로 몰려 억울한 처벌을 받을 때, 가까운 사람에게 금전적인 피해를 당했을 때, 혹은 근거 없는 소문과 거짓말로 사회적 평판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때,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사람은 누구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본능이 먼저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상대방의 거짓과 악함을 사람들에게 폭로해 똑같이 갚아주려 하거나,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애씁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솔직한 본성입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라는 말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내하고 견디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억울한 일을 마주하면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터뜨리거나 어떻게든 그 억울함을 되갚아주려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시인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본문 시편 109편 2~4절까지의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2)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3)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4)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이처럼 시인은 원수들로부터 극심한 억울함을 당했을 때, 사람을 찾아다니며 변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유력한 자들을 찾아가 도움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와 똑같은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사무엘하 16장을 보면,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피난길에 올랐을 때 베냐민 사람 ‘시므이’로부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끔찍한 저주를 받은 사건이 나옵니다.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무엘하 16장 7절)’ 이때 분노한 다윗의 부하들이 당장 저 ‘시므이’의 목을 베겠다고 나섭니다. 하지만 그때 다윗은 그들을 만류하며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저는 이 고백이야말로 성경에 기록된 인간의 고백 중 가장 위대한 말씀 중 하나라고 확신합니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사무엘하 16장 11~12절)’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어쩌면 억울한 일의 연속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억울한 일을 마주합니까?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크고 작은 억울함을 겪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 아파하는 대개의 이유도 바로 이 억울한 일들 때문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씀(로마서 5장 20절)처럼, 우리가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려 할수록 세상의 죄악과 사단의 방해는 더욱 거세집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자일수록 더 많은 영적 전쟁과 억울한 일을 겪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은혜받을 만하면 시험이 들고, 문제가 해결될 듯하면 억울한 일이 발생하고, 가정에 평안이 찾아올 것 같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터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 삶에 억울한 일이 발생하는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다윗처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똑같이 싸우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믿고 견딘다면 하나님께서 대신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입을 열어서 해야 할 것은 그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억울하면 억울할수록 더욱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 꾸준히 기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오늘의 본문 시편 109편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여러분,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어느 것이 더 힘들까요? 당연히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힘듭니다. 신앙인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신다면, 우리는 견뎌낼 수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지역을 선교할 때도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은 음성으로 그를 붙들어 주셨기 때문에 그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사도행전 18장 9~10절)’ 그 결과 바울은 그 어느 지역보다 오랫동안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즉,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느낌’이 아닌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느낌을 붙들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나?’ ‘나의 기도가 부족한가?’라는 감정에 사로잡히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흔들리게 되고,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의 선배들은 이 시기를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 부르며, 이때야말로 간절히 기도할 때라고 말합니다.
내 안에서 나오는 기도의 언어가 고갈되었을 때, 기도를 포기하지 말고 성경의 말씀을 소리내어 읽음으로 그것을 나의 기도로 삼아야 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기도가 나오지 않을 때는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도 기도가 됩니다. 예를 들어 오늘의 본문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원수에 대한 저주’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원수가 이렇게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시인의 고백입니다. 시편 109편 6절부터 15절까지 꼭 읽어보십시오. 읽기만 해도 마음이 시원하고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릴 것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이 말씀에 대입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대신하여 성경이 이렇게 말해주니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성경의 기자들도 힘들었구나!’ 이런 동질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이처럼 ‘느낌’이 아니라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느낌만으로 신앙생활 하면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찬송가의 가사를 묵상하는 것도 너무나 좋은 방법입니다. 찬송가 370장 ‘주안에 있는 나에게’ 찬송가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이러한 찬송가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주는지 모릅니다. 느낌과 감정이 아닌,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기원합니다.
셋째, ‘그러므로 기도는 대체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 오늘 설교를 단 한 마디로 줄이면 이렇게 됩니다. “기도는 세상의 모든 저주와 억울함을 하나님의 ‘축복(祝福)과 선(善)’으로 바꾸는 거룩한 능력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에게 저주와 멸시를 쏟아낼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께 기도로 넘겨드리면,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선’으로 갚아주십니다. 내가 직접 보복하지 말고 침묵하며 기도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 일하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즉, ‘기도는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권능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나’입니다. ‘그 사람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상황이 아니라 나를, 그 사람이 아니라 나를 바꿈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저와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새로운 한 달 7월을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7월 한 달도 오직 예수! 오직 기도! 오직 말씀! 붙들고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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