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반복이다. (시편 111편 1~10절)
(1)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 (3) 그의 행하시는 일이 존귀하고 엄위하며 그의 의가 영원히 서 있도다 (4)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 (5)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6) 그가 그들에게 뭇 나라의 기업을 주사 그가 행하시는 일의 능력을 그들에게 알리셨도다 (7)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며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8) 영원무궁토록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9)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10)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7월 7일 화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11편 1절부터 10절까지입니다. <신앙은 반복이다>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수많은 것들을 잊어버리며 살아갑니다. 어제 먹은 저녁 메뉴가 잘 기억나지 않고, 오늘 있을 중요한 약속을 깜빡하여 당황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가진 기억력의 한계입니다. 물론 망각의 은혜가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는 되새김질하지 말고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은혜를 경험하고도, 막상 눈앞에 또 다른 문제가 찾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원망하고 낙심하는 것은 신앙 성장에 있어서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여 이제까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다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억력의 한계를 넘어 온전한 신앙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반복’입니다.
오늘의 본문 시편 111편 4절과 5절을 보면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4)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 (5)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어떻게 기억하게 하실까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예배를 드리게 함으로써 기억하게 하십니다.
학생이 시험을 잘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리 머리가 좋은 학생이라도 책을 딱 한 번 읽고 백 점 맞을 수는 없습니다. 이해될 때까지 반복해서 책을 읽고, 또 틀린 문제를 반복해서 풀어봐야 온전히 자기 것이 됩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똑같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은 단 한 번 듣고 깨달아 완성되는 일회성 지식이 아닙니다. 어제 은혜를 받았어도 오늘 또 은혜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예배를 드렸어도 이번 주일에 다시 예배드려야 살 수 있습니다. 즉, 은혜의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경건 생활을 반복해야 합니다.
알랭 드 보통이라는 철학자 겸 소설가가 있습니다. 그는 특이하게도 무신론자이면서 기독교를 매우 높게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라는 책에서 기독교의 탁월성을 설명하면서 ‘기독교는 반복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해마다 사순절이나 대림절 같은 절기를 반복해서 지키기 때문입니다. 매년 고난주간이 되면 금식하고 성탄절이 되면 즐거워합니다. 해마다 똑같은 것을 반복하기 때문에 어떤 철학자들은 이러한 기독교를 매우 촌스러운 종교라며 싫어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무려 이천 년 동안 똑같은 일을 반복해 왔습니다. 무려 이천 년 동안 부활절을 지키고, 무려 이천 년 동안 성탄절을 지켰습니다. 중요한 것일수록 반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야기가 완전히 내 몸에 체득될 때까지 반복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반복할 때, 비로소 그것이 몸에 새겨지고 마음에 새겨져 삶으로 실천이 되는 것입니다.
김연아 선수가 완벽한 점프 한 번을 선보이기 위해 연습한 횟수는 1년에 약 9,000번이라고 합니다. 하루 8시간 연습에 30번, 그렇게 300일 넘게 훈련한 시간의 결실입니다. 흔히 ‘한 번의 점프를 위해 천 번을 연습한다’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프로야구 홈런왕들의 스윙은 어떨까요? 다르지 않습니다. 홈런왕 이승엽 선수 역시 그 단 한 번의 완벽한 스윙을 위해 하루에만 1,000번의 배트를 휘둘렀다고 합니다. 책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같은 책을 여러 번 읽기 어렵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을 읽으면 우리 뇌의 구조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뇌가 적응하는 데 최선을 다하지만, 두 번, 세 번 읽을 때는 그 뇌가 이미 저장된 지식을 바탕으로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깨닫지 못하던 것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으면 유익한 까닭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우리는 성경을 반복해서 읽습니다. 한번 읽을 때와 두 번 읽을 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시편 말씀을 매월 한 번씩 읽는 사람과 1년에 한 번 읽는 사람이 받는 감동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중요한 것일수록 반복해야 합니다. 지루하다고 여기지 말고, 같은 말씀 또 읽고 같은 기도 또 하십시오. 괜찮습니다. 똑같은 말씀 읽고, 똑같은 기도 한다고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본문 시편 111편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반복입니다. 2절과 3절 말씀 보십시오. ‘(2)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 (3) 그의 행하시는 일이 존귀하고 엄위하며 그의 의가 영원히 서 있도다’ 이미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역사를 반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반복해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5절에 나오는 양식은 ‘만나와 메추라기’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기업은 ‘가나안땅’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셨다는 것은 팔려 간 노예를 되사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출(出)애굽’ ‘애굽’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합니다. 모두 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일이며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교회 학교 다닐 때부터 배운 것이기도 합니다. 넓은 관점으로 보면, 성경은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이라는 하나의 관점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청파동 교회는 ‘성경 천독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매 주일 나오는 성도들을 300명이라고 보면, 한 사람당 세 번 정도 해야 하는 양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성경 통독 몇 번 하셨습니까? 과거에 한 것 말고 최근에 몇 번 하셨습니까? 현재 성경 통독, 성경 필사하지 않는 분들은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십시오. 하루에 석 장씩 하면 됩니다. 무더운 7월 8월 새로운 신앙의 목표를 세우십시오. 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새벽기도, 수요 말씀 사경회, 금요 기도회, 주일예배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십시오. 신앙은 반복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펴고, 날마다 기도의 무릎을 꿇고,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 내는 이 지루한 반복 속에 진정한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도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신앙은 한 번의 행사가 아니라, 끊임없는 반복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반복하는 모든 교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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