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은 명령입니다. (시편 113편 1~9절)
(1)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2)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3)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4)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 (5)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6)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7)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8)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9)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7월 9일 목요일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관심 가운데 1층 리모델링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끝까지 안전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두 달간의 영적 시험에서 우리 모두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13편 1절부터 9절까지입니다. <찬양은 명령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시편 113편 1~9절)의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난다’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와 매우 유사하다’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는 그 자체가 명령형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찬양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의무’라는 것입니다. 기분 좋을 때나 성공했을 때, 잘 나갈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 나쁠 때나 실패했을 때, 잘 나가지 못할 때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진짜 믿음은 후자의 경우에 나타납니다. 잘 나갈 때 찬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잘 안될 때, 기분이 나쁠 때입니다. 그럴 때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찬양하십니까?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찬양의 범주는 확대합니다. 시편 113편 2절을 보십시오. ‘이제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면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주일에만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기분 좋을 때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면합니다. ‘이제부터 영원까지’는 ‘모든 시간’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항상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기분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방금 읽은 시편 113편 2절이 ‘시간의 확장’을 뜻한다면, 3절은 ‘공간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는 말씀은, 저 동쪽에서부터 서쪽 끝까지 즉, 장소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 목욕탕 같은 일상의 자리는 물론이고, 위기의 순간에도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떤 이유로 하나님을 찬양하십니까?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가르쳐 줍니다.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 (시편 113편 4절)’ 한마디로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존재보다 더 높고, 강하며, 지혜롭고 뛰어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으며, 대등한 위치에 놓일 수 없다’라고 선포합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시편 113편 5절)’ 하지만 하나님이 진짜 위대하신 이유는 바로 그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5)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6)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시편 113편 5~6절)’ 이 ‘낮아지심’의 은혜가 있기에 오늘 ‘찬양이 있고 기독교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하나님이 그저 저 높은 곳에 계시기만 한 분이었다면, 그저 강하고 뛰어나기만 한 분이었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단 한 사람도 앉아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가장 낮은 자리에 친히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장 6~8절)’ 하나님의 진정한 위대함은 바로 ‘비하(卑下)’ 즉 ‘낮아지심’에 있습니다.
시인은 높고 높으신 하나님이 어떻게 이 땅의 낮고 낮은 자리에 오셔서 인간의 삶에 개입하셨는지 두 가지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살리신 것’입니다. 현재 그들은 질병과 죄로 인하여 공동체로부터 쫓겨난 자들이 살고 있는 먼지 더미와 거름 더미에 묻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들을 그 더러운 곳에서 건져 내신 후, 사회의 높은 지도층의 인사들과 함께 식사하게 하십니다. 즉 그들의 지위를 회복시킨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성의 회복’입니다. 첫 번째가 ‘남성의 회복’이라면, 두 번째는 ‘여성의 회복’입니다. 고대 근동(현재 중동 지역)에서 여성이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은 가장 비극적인 일이었습니다. 집안에서의 모든 권한을 빼앗기고 심지어는 쫓겨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여성을 지켜주시고, 그 여성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시편 113편 9절에 나오는 표현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면서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셨다’라는 것은 그녀로 하여금 아이를 낳게 하심으로써 집안에서의 지위를 당당히 누리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오늘의 시편 113편에서 시인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그저 하나님이 높은 분이기 때문이거나 위대하신 분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 계신 위대한 분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곳에 임하셔서 천한 자들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말을 심하게 더듬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출석하던 교회에서 간증을 요청받았습니다. 청년은 당연히 거절했습니다. 말을 더듬는 자신이 어떻게 성도들 앞에서 간증하겠느냐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의 거듭된 권면에, 그는 눈물로 기도하며 순종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놀랍게도 간증의 자리에서 청년의 오랜 언어 장애가 치유되었습니다. 말을 더듬던 증상이 깨끗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후 그는 5만 명이 넘는 대형 집회에서도 당당하게 말씀을 선포하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토록 말을 더듬던 청년을 5만 명 앞에서 당당히 설교하는 대형 집회의 설교자로 세우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찾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금 부족하더라도 순종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능력에 맞는 사명을 구할 것이 아니라 사명에 맞는 능력을 구하라!’ 여러분, 어떤 사람이 성장할까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명을 부여받았더라도 순종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성장합니다. 능력에 따라 살지 않고 ‘사명에 따라 사는 사람’이 성장합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주실 때 반드시 능력도 함께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실 때 바쁘다고 핑계 대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바쁘다고 핑계 대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그래 네가 지금 많이 바쁘구나! 그래서 주의 일을 할 수가 없구나! 그럼, 지금부터 내가 너를 안 바쁘게 해줄게.” 바쁠수록 주의 일도 더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인 ‘토머스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는 영국의 웨일스라는 시골의 작은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작다고 해서 주의 일을 못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예산이 부족하다고, 일꾼이 부족하다고 주의 일을 못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나귀 새끼도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오병이어라는 작은 도시락도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순종하면 길이 열립니다. 순종하면 성장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전심으로 순종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순종함으로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능력에 맞는 사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에 맞는 능력을 구함으로 더 성장하는 우리 모든 교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