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8월 17일(월)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 (겔 41:1~11)
    2026-08-16 16:51:11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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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권에 따르는 책임 (에스겔 411~11)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에 이르러 그 문 벽을 측량하니 이쪽 두께도 여섯 척이요 저쪽 두께도 여섯 척이라 두께가 그와 같으며 (2) 그 문 통로의 너비는 열 척이요 문 통로 이쪽 벽의 너비는 다섯 척이요 저쪽 벽의 너비는 다섯 척이며 그가 성소를 측량하니 그 길이는 마흔 척이요 그 너비는 스무 척이며 (3) 그가 안으로 들어가서 내전 문 통로의 벽을 측량하니 두께는 두 척이요 문 통로가 여섯 척이요 문 통로의 벽의 너비는 각기 일곱 척이며 (4) 그가 내전을 측량하니 길이는 스무 척이요 너비는 스무 척이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지성소니라 하고 (5) 성전의 벽을 측량하니 두께가 여섯 척이며 성전 삼면에 골방이 있는데 너비는 각기 네 척이며 (6) 골방은 삼 층인데 골방 위에 골방이 있어 모두 서른이라 그 삼면 골방이 성전 벽 밖으로 그 벽에 붙어 있는데 성전 벽 속을 뚫지는 아니하였으며 (7) 이 두루 있는 골방은 그 층이 높아질수록 넓으므로 성전에 둘린 이 골방이 높아질수록 성전에 가까워졌으나 성전의 넓이는 아래 위가 같으며 골방은 아래층에서 중층으로 위층에 올라가게 되었더라 (8) 내가 보니 성전 삼면의 지대 곧 모든 골방 밑 지대의 높이는 한 장대 곧 큰 자로 여섯 척인데 (9) 성전에 붙어 있는 그 골방 바깥 벽 두께는 다섯 척이요 그 외에 빈 터가 남았으며 (10) 성전 골방 삼면에 너비가 스무 척 되는 뜰이 둘려 있으며 (11) 그 골방 문은 다 빈 터로 향하였는데 한 문은 북쪽으로 향하였고 한 문은 남쪽으로 향하였으며 그 둘려 있는 빈 터의 너비는 다섯 척이더라

     

    오늘 본문(에스겔 411~11)은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에스겔 선지자와 함께 성소와 지성소를 측량하는 장면입니다. 에스겔 40장에서 성전 바깥의 뜰과 문들을 측량하셨던 하나님은 41장에 이르러 비로소 성전의 핵심 공간인 성소와 지성소로 에스겔을 인도하십니다. 에스겔 411~4절을 보면 천사가 성소와 지성소를 측량합니다.

     

    성막의 가장 안쪽에 있는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한 곳으로, 1년에 단 한 번 대속죄일(大贖罪日)’에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학자들의 주석에 따르면 에스겔 411절에서는 천사가 에스겔을 성소로 데리고 들어가지만, 지성소를 측량할 때는 그가 안으로 들어가서라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기에 지성소의 거룩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소에서 지성소(가장 안쪽 방)로 갈수록 공간의 치수는 작아지고 거룩함의 농도는 짙어집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 역시 바로 거룩함입니다. 물론 성소와 지성소의 이러한 구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으로 말미암아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마태복음 2750~5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이어서 히브리서 1019절에서 히브리서의 기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와 임재(臨在)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거룩함의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성전 회복의 환상은 단순히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건축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심령에 진정한 성전이 임한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16절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구약학자인 차준희 교수는 이를 두고 성령의 민주화라는 표현을 씁니다. 구약 시대에는 왕이나 제사장 같은 특별한 소수에게만 성령이 임하고 성전이라는 제한된 공간에만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렀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성령의 보편화·민주화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이 놀라운 은혜는, 동시에 성전 된 우리에게 이전보다 더욱 철저한 영적 거룩함이 요구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머무시는 처소로서 우리의 생각과 언어, 삶의 모든 자리를 정결하게 지켜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국가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라는 유명한 정치학 격언이 있습니다. 국민 개개인의 의식과 성숙도가 국가의 품격을 결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영적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주의 몸 된 성전이 되었다는 말은, 소수의 뛰어난 영성보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거룩함이 곧 한국 교회의 품격을 좌우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지성소를 보여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깊은 임재의 자리를 우리에게 열어주셨습니다. 오늘, 이 새벽에 그 복된 임재의 특권을 깊이 누리시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사모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거룩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기도할 때 주어집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임재를 바라보며, ‘성령의 전()’이 된 저와 여러분을 통해 우리 청파동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완성되어 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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