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헝클어졌을 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에스겔 48장 1~14절)
(1) 모든 지파의 이름은 이와 같으니라 북쪽 끝에서부터 헤들론 길을 거쳐 하맛 어귀를 지나서 다메섹 경계선에 있는 하살에논까지 곧 북쪽으로 하맛 경계선에 미치는 땅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단의 몫이요 (2) 단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아셀의 몫이요 (3) 아셀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납달리의 몫이요 (4) 납달리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므낫세의 몫이요 (5) 므낫세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에브라임의 몫이요 (6) 에브라임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르우벤의 몫이요 (7) 르우벤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유다의 몫이요 (8) 유다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너비는 이만 오천 척이요 길이는 다른 몫의 동쪽에서 서쪽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 (9) 곧 너희가 여호와께 드려 예물로 삼을 땅의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이라 (10) 이 드리는 거룩한 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지니 북쪽으로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요 서쪽으로 너비는 만 척이요 동쪽으로 너비가 만 척이요 남쪽으로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라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11) 이 땅을 사독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지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될 때에 레위 사람이 그릇된 것처럼 그릇되지 아니하였느니라 (12) 땅의 예물 중에서 그들이 예물을 받을지니 레위인의 접경지에 관한 가장 거룩한 예물이니라 (13) 제사장의 경계선을 따라 레위 사람의 몫을 주되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으로 할지니 이 구역의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가 각기 만 척이라 (14) 그들이 그 땅을 팔지도 못하며 바꾸지도 못하며 그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 거룩히 구별한 것임이라
1. 여러분이 만약 1,000개짜리 조각 그림 맞추기 게임을 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비슷해 보이는 조각 1,000개가 바닥에 흩어져 있으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기 마련입니다. 그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기준점이 되는 조각 그림을 찾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전체 그림에서 네 모서리를 찾아 판의 경계를 잡고 차근차근 조각 그림을 맞추어 가야 합니다. 따라서 기준이 되는 틀을 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조각 그림을 맞추는 과정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관계가 꼬이고 마음의 질서가 무너져 내릴 때가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이것을 바로잡아야 할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때 조급하게 이 조각 저 조각 억지로 맞추려 애쓰기보다, 우리 인생의 판을 다시 정렬할 ‘기준점’을 찾아야 합니다.
2. 이제, 에스겔서의 마지막인 48장에 이르렀습니다. 에스겔 전체를 잠시 되짚어 보면, 이 글의 일차 독자는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당시 그들에게는 땅도, 성전도, 주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에스겔을 통해 새로운 소망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그것은 새로운 성전의 모습과 새로운 예배, 그리고 새롭게 회복될 땅의 공평한 분배입니다. 오늘 본문 에스겔 48장은 바벨론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인생의 모든 질서가 산산조각 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삶의 설계도’입니다. 즉, 헝클어진 우리 삶에 질서를 다시 잡아 주는 기준점이 되는 말씀입니다.
3. 그렇다면 삶이 무너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기준점’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기준점은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먼저 에스겔 48장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모든 지파의 이름은 이와 같으니라 북쪽 끝에서부터 헤들론 길을 거쳐 하맛 어귀를 지나서 다메섹 경계선에 있는 하살에논까지 곧 북쪽으로 하맛 경계선에 미치는 땅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단의 몫이요’ 낯선 지명들이 이어지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단 지파가 가장 먼저 언급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참고로 과거 여호수아 시대의 땅 분배에서는 단 지파가 마지막에 땅 분배를 받았지만(여호수아 19장), 공교롭게도 새롭게 회복된 땅에서는 가장 먼저 땅 분배를 받습니다. 여러분, 단 지파가 어떤 지파였는지 기억하십니까? 야곱의 첩 중 하나인 ‘빌하’의 후손으로 역사적으로 보면 사사기 시절부터 우상숭배에 앞장섰고,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왕이 금송아지를 세웠던 곳이 단 지파의 영토였습니다. 한마디로 우상숭배와 영적 반역의 중심지였습니다.
4. 우리 생각에는 새롭게 회복될 땅에서는 이런 단 지파가 영토 분배에서 완전히 제외되거나 적어도 맨 꼴찌로 밀려나야 할 것 같은데, 실제는 정반대였습니다. 단 지파가 배제되기는커녕, 하나님께서는 이 단 지파를 가장 먼저 호명해서 땅을 분배해 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헝클어진 인생을 바로잡는 첫 번째 기준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공로나 자격이 아닌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입니다.
5. 우리는 ‘양심의 가책’과 ‘사탄의 음성’을 구별해야 합니다. 둘 다 우리 마음에 죄를 인지시켜 주지만, 양심의 가책은 스스로 죄를 깨닫고 뉘우쳐 하나님께로 향하게 한다면 사탄은 “너는 자격 없어” “너 같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어”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면서 자꾸만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따라서 삶의 여러 가지 문제와 우리의 잘못된 판단과 죄로 우리 삶이 헝클어졌을 때, ‘우리가 붙들어야 할 기준점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우리의 노력과 공로가 아닙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여러분, 죄의 늪에서 빠져나온 다음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죄 가운데 넘어져 있을 바로 그때 하나님께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여전히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6. 둘째로, 헝클어진 삶을 바로잡는 두 번째 기준은 ‘예배’입니다. 에스겔 48장 8절과 10절을 읽겠습니다. ‘(8) 유다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너비는 이만 오천 척이요 길이는 다른 몫의 동쪽에서 서쪽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 (10) 이 드리는 거룩한 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지니 북쪽으로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요 서쪽으로 너비는 만 척이요 동쪽으로 너비가 만 척이요 남쪽으로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라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8절과 10절 끝부분에 공통으로 나오는 말이 ‘여호와의 성소가 중앙에 있게 하리라’라는 것입니다. 이 ‘중앙’은 단순히 한가운데를 뜻한다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 곧 공동체의 심장부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배의 자리가 세워지리라’라는 말씀입니다.
7. 여러분, 우리 삶이 언제 자꾸 무질서해지고 헝클어질까요? 중심이 되어야 할 성소 곧, 예배가 우리 삶에서 후 순위로 밀려날 때입니다. 내 형편과 상황, 그리고 이해관계에 따라 예배와 기도, ‘거룩’의 자리가 세상과 타협하며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때 어느새 우리 삶이 무질서해지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삶의 참된 질서는 하나님을 내 삶의 정중앙에 모실 때 비로소 회복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변방이 아닌 삶의 정중앙에 모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과 일터의 중심을 붙잡아 주시고, 마침내 헝클어졌던 인생의 모든 조각을 제자리에 맞추어 주실 것입니다.
8. 오늘 하루 우리는 또 여러 사람을 만나고 복잡한 문제들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흔들리며 헝클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 삶 가장 중앙에 하나님을 모시고 그분을 삶의 참 주인으로 모신다면,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질서와 평강(平康)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그 주님의 은혜를 붙들며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문)) 하나님, 자격 없는 우리를 은혜로 받아 주시고 자녀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과거의 실패와 죄책감에 머물지 않고 조건 없이 사랑해 주시는 은혜에 기대어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 삶 가장 중심에 하나님을 두며 말하고 행동하고 판단하게 하옵소서.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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