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8월 28일(금)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 (겔 47:13~23)
    2026-08-27 19:35:44
    청파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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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에게도 땅이 필요합니다. (에스겔 4713~23)

     

    (1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는 이 경계선대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되 요셉에게는 두 몫이니라 (14) 내가 옛적에 내 손을 들어 맹세하여 이 땅을 너희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하였나니 너희는 공평하게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 (15) 이 땅 경계선은 이러하니라 북쪽은 대해에서 헤들론 길을 거쳐 스닷 어귀까지니 (16) 곧 하맛과 브로다며 다메섹 경계선과 하맛 경계선 사이에 있는 시브라임과 하우란 경계선 곁에 있는 하셀핫디곤이라 (17) 그 경계선이 바닷가에서부터 다메섹 경계선에 있는 하살에논까지요 그 경계선이 또 북쪽 끝에 있는 하맛 경계선에 이르렀나니 이는 그 북쪽이요 (18) 동쪽은 하우란과 다메섹과 및 길르앗과 이스라엘 땅 사이에 있는 요단 강이니 북쪽 경계선에서부터 동쪽 바다까지 측량하라 이는 그 동쪽이요 (19) 남쪽은 다말에서부터 므리봇 가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이는 그 남쪽이요 (20) 서쪽은 대해라 남쪽 경계선에서부터 맞은쪽 하맛 어귀까지 이르나니 이는 그 서쪽이니라 (21) 그런즉 너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대로 이 땅을 나누어 차지하라 (22) 너희는 이 땅을 나누되 제비 뽑아 너희와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타국인 곧 너희 가운데에서 자녀를 낳은 자의 기업이 되게 할지니 너희는 그 타국인을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 같이 여기고 그들도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너희와 함께 기업을 얻게 하되 (23) 타국인이 머물러 사는 그 지파에서 그 기업을 줄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 최근 한국서 한 달 일하고 매달 연금? 외국인 평생 연금 실체에 부글부글이라는 제목의 자막 뉴스를 보았습니다. 뉴스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한 중국인이 한국에 와서 한 달만 일하고 중국으로 돌아간 뒤 국민연금의 추납(추후 납부)제도를 이용해 평생 연금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당장 댓글에 이런 비판이 잇달았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에게 줄 것도 부족하다면서 외국인들에게 왜 연금을 주느냐?” 뉴스 내용만 보면 한 달 일한 외국인에게 국민연금을 평생 지급한다는 사실이 납득이 안 됩니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 확인이 필요합니다. 한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은 합법적으로 일하는 외국인들에게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면 연금을 받게 합니다. 이 말은 외국인 노동자들도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에 가입되었고, 자국민과 똑같이 그들도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2. 실제로 한국의 국민연금 자금 형성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적지 않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의 노동력은 한국 경제와 산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잘 알다시피 지방은 말할 것도 없이 서울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지 않으면 당장 식당이나 서비스업, 제조업은 운영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국민연금의 추가 납입제도를 법적으로 손볼 필요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극적인 뉴스는 자칫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이주민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 문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들도 우리와 인종과 피부가 다르지만, 한국 사회에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요 동료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3. 오늘 본문(에스겔 4713~23)은 새롭게 회복된 약속의 땅에 대한 분배에 대한 말씀입니다. 14절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옛적에 내 손을 들어 맹세하여 이 땅을 너희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하였나니 너희는 공평하게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공평하게 땅을 나누어 주리라는 것인데, 여기서 공평하게라는 것이 어떤 기준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각 지파의 인구수(人口數)가 많고 적음에 따라 인구가 많으면 큰 땅을 주고 작으면 그에 맞는 작은 땅을 준 것인지, 아니면 인구수에 상관없이 똑같이 크기의 땅을 준 것이지는 알 수 없습니다.

     

    4. 다만 이 공평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에스겔 4722~23절에 나옵니다. ‘너희는 이 땅을 나누되 제비 뽑아 너희와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타국인 곧 너희 가운데에서 자녀를 낳은 자의 기업이 되게 할지니 너희는 그 타국인을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 같이 여기고 그들도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너희와 함께 기업을 얻게 하되 타국인이 머물러 사는 그 지파에서 그 기업을 줄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당시 타국인 곧 이방인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어느 정도 비슷한 권리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할례를 받으면 유월절 식사에도 참여할 수 있었고, 원한다면 제사와 같은 종교 행위에도 부분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레위기 2218). 하지만 그들에게 끝내 허용되지 않은 권리가 바로 땅의 소유였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의 마지막 환상에서 이 제한마저 완전히 철폐됩니다. 구약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완전히 뛰어넘는 메시지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보편적 은혜의 서광을 비추는 대목입니다.

     

    5. 그렇다면 이 에스겔의 환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첫째, ‘공평하신 하나님의 품성을 닮아야 합니다. 우리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약육강식(弱肉強食)’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라는 냉정한 현실에서 자신의 몫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합니다. 자연스럽게 그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소외됩니다. 심지어 개인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며 당연시(當然視)합니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의 환상에서 보듯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이 모든 피조물에 공평하게 흘러갔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은혜 물줄기는 모든 사람에게 미쳐야 합니다. 남녀노소, 빈부격차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공평하게 흘러가야 합니다.

     

    6. 둘째, ‘보편적 구원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타국인을 본토 이스라엘 족속과 똑같이 여기고 그들도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기업을 얻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에게 땅을 준다는 것은, 그들도 똑같이 하나님 약속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을 자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종종 우리라는 울타리를 배타적으로, 폐쇄적인 의미로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우리 가족’, ‘우리 한민족다정한 말 같지만, 자칫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소외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16절에서 당신의 보편적인 구원의 비전을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7.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에스겔이 본 새 창조의 환상은 우리에게 희망과 동시에 사명감을 줍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불공평과 불의가 만연한 세상처럼 보일지라도, 역사의 마지막에 하나님이 완성할 하나님의 나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성전 문지방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수가 온 세상에 흘러 모든 피조물을 살려낼 것입니다. 거기 약속의 땅에서는 모든 것이 공평하게 나누어질 것이고, 거기서는 이스라엘과 이방의 구분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주어진 현실은 어쩔 수 없으니, 하나님만 바라보면 역사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품고, 여전히 불완전한 이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그 일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8. 우리가 받은 은혜를 독점하지 않고 나누는 것, 우리가 누리고 있는 축복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렇지 못한 자와 나누는 것,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독점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전하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모두 공평하며 보편적 사랑으로 모든 이를 품으시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믿음의 자녀가 되길 바랍니다. 아멘.

     

    기도문)) 하나님, 주님의 공평한 사랑과 보편적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넓혀 주셔서 우리 주위에 있는 이주민들, 억압받는 이들, 소외된 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품는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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