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4월 1일(수)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잠 16:1~9)
    2026-03-31 21:58:42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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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을 신뢰하라. (161~9)

     

    (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6)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8)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41일 수요일, 4월의 첫날이면서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셋째 날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잠언 161절부터 9절까지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을 신뢰하라>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수많은 계획을 세우며 살아갑니다. 청년들은 진로와 취업을 계획하고, 장년들은 가족의 미래를 계획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우리가 세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폭풍우가 밀려오기도 하고 때로는 오랫동안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책의 저자 제럴드 싯처는 의사가 되기를 소망했던 사람입니다. 그에게 의사는 하나님이 주신 너무나 확실한 소망이었고, 너무나 확실한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어이없게도 그는 의사가 되기 위해 대학을 진학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실수를 합니다. 의사가 되려면 이과대학에 진학해야 하는데, 그는 실수로 문과대학에 진학했던 것입니다. 수학, 과학, 생물학을 공부해야 할 그가 수필을 읽고, 소설을 쓰고, 시를 암기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문과 쪽에 관해서는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었던 저자는 매일의 학교생활이 커다란 스트레스였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에게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본 교수님은 저자에게 경종을 울리는 다음의 한마디를 해주었습니다. “나중에 네가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두고 봐야 안다.” 결국, 이 말은 적중하여 저자는 본래 계획했던 인생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의대가 아닌 신학교에 진학하였고 의사가 아닌 목사가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목회자로 머물지 않고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고, 또 많은 책을 집필하는 연구자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가 대학 시절에 배웠던 공부들은 지금 그에게 꼭 필요한 원료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그는 사람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의 인생의 빙산의 일각입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저자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여러분들은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사람의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자는 21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봐도 그들은 천생연분이었고, 너무나 아름다운 부부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나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녀가 생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문제로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그들에게도 아이가 생겼습니다. 그것도 한 아이가 아니라, 무려 네 아이가 생겼습니다. 이제는 정말, 남 부러울 것 없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이 가족이 고향을 다녀오는 길에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음주 운전 차량과 정면충돌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어머니와 그의 아내, 그리고 네 명의 아이 중 한 아이가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저자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깨닫게 된 하나님의 은혜를 책으로 기록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책입니다.

     

    얼마 전, 노회를 위한 준비 모임으로 우리 교회 장로님들과 목사님들이 가까운 동빙고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동빙고 교회는 우리와 같은 용산 시찰회 소속으로 두란노서원이라는 출판사 옆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현재 김수훈 목사님께서 담임 목회를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 목사님과 장로님들은 이 교회를 방문하면서 큰 위로를 얻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대체로 용산에 있는 교회들은 주차장이 협소하여 노회 관련 행사할 때 되도록 회차를 권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를 직접 방문해 보니, 정말 이 교회는 너무나 장소가 협소하여 자동차가 단 한 대도 진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걸어서 교회 앞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시설 또한 너무나 오래되었고, 계단도 상당히 많아서 노약자들이 이용하기에 다소 불편했습니다. 정말 개발이 시급해 보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니 예전에 동빙고 교회 목사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본인이 처음에 이 교회에 부임할 때 재개발한다고 해서, 유리창 하나 깨어져도 교체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자신도 은퇴할 때가 되어 간다고 합니다. 이같이 내일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청파동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처럼 재개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지역 개발 소식에 누구보다 민감하여 나름의 대비책을 세우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오늘의 본문(161~9)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잠언 161)’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완벽하게 잘 세웠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는 바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자신의 계획대로 인생을 완벽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조절하면서 완벽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첫 번째 메시지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입니다. ‘(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언 161~3)’

     

    여러분, 왜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까요? 왜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치 앞의 일도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시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요구를 거부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옳고 누가 틀린 것입니까? 아브라함, 모세, 요셉, 마리아,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순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순종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점입니다. 아브라함은 목적지도 없이 고향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요셉은 꿈과 정반대로 이루어지는 현실 앞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마리아는 사회적으로 치명적인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모세는 자기 능력의 한계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메시지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입니다. ‘(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5) 마음이 교만한 자는 여호와께 미움을 받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6) 인자와 진리로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잠언 164~6)’

     

    이 말씀은 매우 급진적입니다. 착하고 선한 사람만 하나님의 도구가 아니라 악하고 나쁜 사람도 하나님의 도구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까지도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으니 의심하지 말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늘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비난하고 욕해야 할까요? 험담하고 꾸중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그런 사람을 만나더라도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정중한 자세로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생각으로 그에게 더 큰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의를 용납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연단하여 사용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에 대해 신뢰하라는 의미입니다.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볼 때마다 비판하고 정죄하는 자세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여러분, 사탄이 언제 스트레스를 받을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험담하고 싶고, 비난하고 싶을 때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 삼삼오오 모여서 그를 위하여 합심하여 중보 기도할 때 사탄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 이거 왜 이러지! 내가 의도한 것은 이게 아닌데라며 사탄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사탄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습니까? 기쁨을 주고 있습니까?

     

    세 번째 메시지는 원수와도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입니다. ‘(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8)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7~9)’

     

    우리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요? 여러분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이사, 취업, 결혼, 출산, 진급,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원수와도 화목(和睦)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공로 가운데 가장 큰 공로는 바로 원수와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18)’ 이웃 사랑의 첫 번째 단계가 바로 원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원수가 된 관계를 그대로 내버려두시지 않고 반드시 그 관계를 회복하게 만드십니다.

     

    요셉은 자기의 원수, 자기를 노예로 팔았던 형제들과 화해했습니다. 다윗 또한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용서하고 그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는 순간에도 원수들을 용서하며 그들에게 이 죄를 돌리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화해해야 할 원수는 누구입니까? 오늘 우리가 화목해야 할 이웃은 누구입니까? 요셉처럼, 다윗처럼, 스데반처럼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화해의 통로로 쓰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이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화목하게 만드십니다. 이 사역에 동참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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