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기억하셨으므로 (시편 98편 1~9절)
[시]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2) 여호와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3)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4)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소리 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5) 수금으로 여호와를 노래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노래할지어다 (6) 나팔과 호각 소리로 왕이신 여호와 앞에 즐겁게 소리칠지어다 (7)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주하는 자는 다 외칠지어다 (8)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은 박수할지어다 산악이 함께 즐겁게 노래할지어다 (9)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4월 15일 수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98편 1절부터 9절까지입니다. <그가 기억하셨으므로>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성경에 ‘기억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기억과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억은 가끔 떠올리는 것,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억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2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기억은 이렇습니다.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출애굽기 2장 24~25절)’ 여기에 나오는 기억은 우리의 기억과는 전혀 다릅니다. 만약 여기에 나오는 기억이 우리의 기억과 같은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평소에 우리를 잊고 계시다가 우리가 기도했을 때야 비로소 생각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그러신 분일까요? 평소에는 까맣게 우리를 잊고 계시다가 우리가 기도해야 비로소 기억하시는 분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자녀를 기억해 주십시오. 우리 가정을 기억해 주십시오. 우리 사업장을 기억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기억을 잘 못하시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일까요? 따라서 여기에서 ‘기억’은 ‘행동’을 의미입니다. 하나님, 우리 자녀를 위해 좀 뭔가를 해주십시오. 우리 가정을 위해 좀 뭔가를 해주십시오. 우리 사업장을 위해 좀 뭔가를 해주십시오. 지금은 하나님이 행동하실 때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서의 <기억>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셨다’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동하셨다’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시편 98편 1~9절)에서 시인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행동하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98편 3절 말씀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위해 행동하셨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그 구원의 역사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생각만 하시고 행동하지 않으셨다면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없을 것입니다. 즉, 구원은 행동입니다. 믿음도 행동입니다. 우리가 행동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만 인정하는 것처럼, 하나님 역시 행동으로 나타난 우리의 믿음만 인정하십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을 믿어야 합니다. 행동으로 나타난 것만이 진짜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월급 한 번을 안 갖다주고, 식사 한 끼를 안 사주고, 집 안 청소 한 번을 안 하면서 말로만 사랑한다는 아버지가 있다면, 그 아버지가 과연 가족들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는 행동으로 끊임없이 가족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행동으로 드러난 사랑’입니다.
시편 98편 1절에 나오는 ‘기이한 일’은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말합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시편 98편 1절)’ 시인이 지금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는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성경에 나오는 ‘기이한 일’은 ‘홍해 사건’과 ‘출애굽의 열 가지 사건’을 의미합니다. 모든 세상 사람이 버젓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친히 이루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출애굽의 사건은 딱 한 번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제2, 제3, 제4의 출애굽 사건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도 출애굽 사건이고, 흑인들이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것도 출애굽 사건이고, 대한민국 백성들이 36년의 치욕스러운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된 것도 출애굽 사건이고,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모든 죄와 허물로부터 구원하신 십자가의 사건도 출애굽 사건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출애굽의 여정 가운데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출애굽 사건을 이미 끝난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사건인 것처럼, 여전히 살아있는 사건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구약의 아모스서 같은 경우에도 홍해 사건이 일어나고 수백 년이 시간이 지난 뒤에 그의 후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지만,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가 차지하게 하였고 (아모스 2장 10절)’ 출애굽 사건을 ‘너희 조상들의 사건’이라고 하지 않고 ‘너희들의 사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너희 조상들’을 끌어내신 것이 아니라 ‘너희들’을 끌어내셨다고 말씀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의 이야기를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즐겁게’입니다. 시편 98편 4절에 두 번, 6절, 8절에 나옵니다. 또 오늘 본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노래하다’ ‘소리치다’ ‘외치다’입니다. 왜 이렇게 시인은 성도들에게 즐겁게 노래하고, 소리치고, 외치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동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기뻐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4)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소리 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5) 수금으로 여호와를 노래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노래할지어다 (6) 나팔과 호각 소리로 왕이신 여호와 앞에 즐겁게 소리칠지어다 (시편 98편 4~6절)’
심지어 시인은 모든 피조물, 자연계와 세계를 구성하는 삼라만상의 자연 만물도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7)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주하는 자는 다 외칠지어다 (8)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은 박수할지어다 산악이 함께 즐겁게 노래할지어다 (시편 98편 7~8절)’ 왜 이렇게 시인은 자기 혼자 찬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까지 그리고 피조 세계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면할까요? 내가 기쁘니까 모든 것이 기뻐 보이고, 내가 즐거우니까 모든 것이 즐거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시편 98편 9절은 종말 때에 심판관으로 오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권면입니다. 의로운 심판관을 기다리는 사람은 현재의 세상에서 고난 겪는 사람입니다. 현재의 심판관으로부터 부당함과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심판관이 오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왜 하나님을 찬송하십니까? 의로운 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할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행동하시는 하나님,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오늘도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행동으로 일하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삶에 기쁨이 충만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