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4월 9일(목)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시 92:1~15)
    2026-04-08 14:56:15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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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인은 풀이지만 의인은 나무입니다. (시편 921~15)

     

    [안식일의 찬송 시] (1~3)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4)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5)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6) 어리석은 자도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7)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8)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 (9)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이다 정녕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흩어지리이다 (10)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11) 내 원수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귀로 들었도다 (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13)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14)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15)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49일 목요일입니다. 꽃샘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921절부터 15절입니다.

     

    오늘 본문(시편 921~15)에서 시인은 악인은 풀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의인은 종려나무와 같이 번성하고 백향목처럼 성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의인은 나이가 들어 세월이 오래될지라도 여전히 열매 맺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을 경험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물론 현실에서 악인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현실에서는 의인들이 고난을 겪고 불행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악인의 뿌리와 의인의 뿌리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풀은 아무리 무성하고 번성하게 자라도 1년을 채 넘기지 못합니다. 여름 장마에 우후죽순처럼 엄청나게 빨리 자라도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합니다. 반면에 나무는 조금 성장이 더디고 때로는 죽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다음 해 봄이 되면 어김없이 새로운 싹을 피워냅니다.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서 싹이 피어날 때 우리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낍니다. 이런 식으로 의인은 천년만년 영원토록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의 삶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안식일의 찬송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시편 전체에서 안식일에 관련된 표제가 붙은 시는 오늘의 본문이 유일합니다. 안식일에 관련이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의미합니다. , 하나님 안에서 뿌리내린 삶,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는 삶, 이런 삶을 사는 존재가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식물이 성장하고 번성하는 데 필요한 자양분이 햇빛과 흙과 공기라면, 우리 인간이 성장하고 번성하는 데 필요한 자양분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과 깊은 교제입니다. 의인들은 이러한 은혜를 힘입어 악인과는 차원이 다른 번성을 누리며 오랫동안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본문 1절부터 5절까지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구원 행위에 대한 찬양입니다. 일반적인 구원 행위라는 뜻은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보편적인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주일날 드리는 예배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공통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그분의 역사를 기뻐하는 것이 주일 예배를 포함한 모든 공적 예배의 목적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주일날 예배드리는 그 모습을 생각하면서 시편 921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3)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4)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5)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온갖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찬양하고, 그분의 이름에 영광을 올려드리는 예배자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시편 921~3)’ 복음성가의 가사이기도 합니다. 아침과 저녁이라는 말은 온종일이라는 뜻합니다. 예배하는 1시간뿐만 아니라 온종일,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우리가 주일 예배를 드리는 그 짧은 시간에도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찬송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신비한 일입니까? 전국 원근 각처에서 모인 수백 명의 성도들이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마음으로 같은 찬송가를 부른다는 것은 그 자체가 신비입니다. 그런데 아주 간혹 제가 앞에서 찬송가를 인도할 때, 그 신비와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때로는 습관적으로 때로는 관습적으로 억지로 찬송을 부르는 분이 있습니다. 정말 죽지 못해 부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주 소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찬송을 부르는 시간에도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고 찬송을 부르는 시간에도 다른 생각을 하며 분주하게 다른 일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입을 꾹 담은 채, 뭔가 불만이 있는 모습으로 가만히 계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고귀한 하나님과의 신비를 경험하는 시간에 찬송을 부르지 못하는 분들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영적인 큰 손해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라도 예배당에 와서 앉아 있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낫겠지만, 너무나도 큰 손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 여러분들이라도 예배 시간에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송의 의미를 깨닫고 전심으로 찬송을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지는 시편 926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은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시인은 어리석은 자와 무지한 자는 하나님의 심오한 뜻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이런 자들에게 철저히 감추어져 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직 성도들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게 됩니다. 스스로 교만하여 지혜 있다고 하는 자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멸망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서 시인은 악인들의 운명은 바람에 날리는 안개와 같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현재는 큰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강렬한 여름 햇볕에 타버리는 식물처럼 이제 곧 말라서 사라질 것입니다.

     

    마지막 시편 9210절 이하의 말씀은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에 대한 감사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구원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보편적인 구원이라면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은 나 한 사람에게 해당하는 개별적인 구원입니다. 이처럼 구원은 집단적인 사건이기도 하지만, 개별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서 한 사람씩 나와서 간증하라고 하면, 똑같은 간증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자기 고유의 간증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 똑같은 간증은 없습니다. 각자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은혜가 다르고 체험이 다릅니다.

     

    이재왕 형제는 네 살 때부터 선천적 근육병을 앓아 어머니가 업어서 키웠습니다. 그는 학교도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습니다. 의사는 그가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버텼고, 혼자서 5백 편의 찬양 시를 만들다가 예수님처럼 서른세 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재왕 형제에게 가장 힘든 시기는 20대였습니다. 매일 무력감, 좌절감, 절망감을 겪었고, 죽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성경을 읽었는데, 바로 이 말씀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편 27)’ 이재왕 형제는 이 말씀이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깨닫고 바로 다음 날 이러한 복음성가의 가사를 썼습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나에게 실망하며 내 자신 연약해 고통 속에 눈물 흘릴 때 못 자국난 그 손길 눈물 닦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저는 이 찬송을 군복무 시절에 듣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마 남자분들 중에 이 찬송을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분이 없을 것입니다. 여자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악인은 풀이지만 의인은 나무입니다>라고 정했습니다. 여러분, 의인도 불행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의인도 고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사람입니다. 찬송의 신비를 알고 찬송을 부를 때에 전심으로 부르는 사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역경 속에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는 믿음을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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