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거룩하심이로다. (시편 99편 1~9절)
(1)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2)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높으시도다 (3)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심이로다 (4)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5)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6)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7)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은 그가 그들에게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도다 (8)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4월 16일 목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99편 1절부터 9절까지입니다. <그는 거룩하심이로다>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지도자의 중요성!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국가나, 단체나, 회사나, 교회, 가정에서 잘못된 지도자가 세워졌을 경우 일어나는 일과 제대로 된 지도자가 세워졌을 때 일어나는 일은 극과 극입니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감독의 역할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똑같은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라 할지라도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결과는 천지 차이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프로야구팀이 총 10개인데, 올해 성적을 예상할 때 전문가들은 그 팀의 감독이 누군지를 맨 먼저 봅니다. 감독을 팀 성적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합창단도 그렇습니다. 똑같은 단원들로 구성된 합창단이라 할지라도 지휘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합창단의 색깔과 소리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래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초대 지휘자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ow)는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세상에 나쁜 오케스트라는 없다. 그저 나쁜 지휘자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너무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참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도자는 불완전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지도자는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을 월드컵 4강으로 이끌었던 히딩크 감독도 완벽한 감독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완벽한 통치자이시고, 완벽한 지도자이십니다. 그분이 이 세상을 다스리시니 우리는 아무 염려 없이 두 다리 쭉 펴고 잠을 잘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첫 번째 말씀 시편 99편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이 한마디만 있으면 게임 끝입니다. 이 한마디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살펴본 것처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시편 99편 1절)’는 히브리어로 ‘야웨 말라크’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당시 성전에서 예배드릴 때 제사장들이 선포하는 관용구였습니다. ‘여호와는 왕이시다 (시편 99편 1절)’ 이렇게 선포하면서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시편이 93편, 97편, 99편 이렇게 세 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외에도 47편과 96편과, 98편은 서두는 아니지만 ‘야웨 말라크’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두 여섯 개의 시편을 가리켜서 ‘야웨 왕권시(王權詩)’라고 부릅니다. 그중에서 시편 99편은 제일 마지막 시편입니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오늘 본문 안에 여호와라는 호칭이 딱 일곱 번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벽한 통치를 강조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일곱 번! 또한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인칭대명사 역시 일곱 번 나옵니다. 시인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3절과 5절, 9절은 같은 형식과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는 거룩하심이로다’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의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발등상(발을 올려놓는 상)이나 성산은 모두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완벽한 지도자로서 성전에 앉아 이 땅을 통치하심에 대한 찬양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처음부터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시편 99편 1절)’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임하시면 만민이 떨고 땅은 흔들립니다. 그런데 지금 여호와께서 어디에 좌정하셨습니까? ‘그룹’ 사이에 좌정하셨습니다. 그룹은 히브리어로 ‘케루빔’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얼굴,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존재를 말합니다. 에스겔서와 이사야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보좌를 호위하는 무사들입니다. 이러한 완벽한 동물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이것은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법궤라고도 합니다.)를 의미합니다. 왕이 보좌에 앉아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 언약궤 안에 임재하셔서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편지를 써야 할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주소에 뭐라고 적어야 할까요? 시편 99편 2절에 하나님의 주소가 나옵니다.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높으시도다’ 하나님의 주소는 ‘시온’ 예루살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높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왕권은 예루살렘 안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민족에게로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통치는 세계적이고, 우주적입니다. 초월적이고 보편적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시편 99편 3절에서 시인은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자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심이로다’ 그런데 왜 시인은 하나님의 이름이 크고 두렵다고 말할까요?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함부로 높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못합니다. 존경하는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 무서운 사람,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이름도 함부로 부르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이름도 우리가 함부로 부를 수 없습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도쉬’입니다. ‘거룩’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거룩은 ‘구별된다.’ ‘떨어져 있다.’ ‘분리되었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과 구별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과 ‘구별’은 되지만, ‘분리’되어 있는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거룩’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과 구별되기를 원하지, 분리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세상과 구별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분리되어 있습니까? 분리가 아닌 구별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신앙생활입니다.
시편 99편 4절과 5절에서 시인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면합니다. ‘(4)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5)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여러분은 어떤 지도자를 원하십니까? 힘으로 억누르는 폭군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정의를 사랑하고 공의를 행하는 지도자를 원하십니까? 당연히 후자일 것입니다. 우리는 정의로우면서도 자애롭고, 힘이 있으면서도 공평한 왕을 꿈꿉니다. ‘정의’는 히브리어로 ‘미슈파트’ ‘공의’는 히브리어로 ‘체데카’ 라고 하는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하나님의 완벽한 통치 원리’를 상징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실현이 가능한 나라일까요? 네, 실현이 가능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법도는 실현이 가능한 법도일까요? 네, 실현이 가능한 법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삶의 모델을 따라 그 나라를 실현해야 합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은 허상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차를 타면 멀미하는지 아십니까? 부조화(불일치)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과 몸으로 느껴지는 것이 다를 때 멀미가 납니다. 예를 들어 차 안에서 책을 보거나, 핸드폰을 보면 멀미가 납니다. 그래서 멀미를 줄이는 방법은 발바닥에 진동을 주면 된다고 합니다. 차 안에서 뒤꿈치를 들었다가 힘주어 내리면 발이 진동을 느끼게 되는데, 그때, 멀미가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있다는 느낌이 사람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적인 멀미를 느낄 때, 왜 하나님 나라는 실현되지 않는가?’ ‘왜 말씀과 현실은 괴리되어 있는가?’를 느낄 때, 좌절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그 말씀이 실제임을 믿고 실천할 때, 그 영적 멀미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실제(진짜)구나!’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이루지 못하면 저 천국에서도 불가능합니다.
시편 99편 6절에는 실제로 그것을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와 아론, 그리고 사무엘입니다. 이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고, 그들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는 실현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는 뜬구름 잡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의 실현(實現)입니다. 십자가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은 생각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행동하시는 분입니다. 행동으로 나타난 것만이 진짜입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은 진짜입니까? 그것이 허상이 아니라, 실제임을 삶으로 증명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는 허상이 아니라, 실제임을 믿습니다. 우리의 삶으로 그것을 증명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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