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의 야무진 소망 (로마서 8장 18~25절)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4월 3일 금요일입니다.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다섯 번째 날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8장 18절부터 25절까지입니다. <피조물의 야무진 소망>이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일명 ‘반려동물 1,500만 시대’ 전체 가구의 약 30% 정도가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위치한 용산구 또한 그 비율이 높아 5가구 중 1가구 이상이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또한 반려 식물을 키우는 가구 수 역시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3명 중 1명이 반려 식물을 키우고 있습니다. 관련 시장의 규모도 무려 2조 원을 넘어선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즉, 우리는 지금 ‘반려동물 1,500만 시대’ 그리고 ‘반려 식물 1,700만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반려자와 함께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반려 돌입니다. 현재 반려 돌은 주로 MZ세대를 중심으로 많아지는 추세인데, 인기 아이돌이 SNS에 반려 돌을 공개하며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왜 반려 돌을 키우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MZ세대들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따로 시간 내어 산책시키거나 밥을 주지 않아도 되고 죽지 않고 무엇보다 정서적인 위로, 말 못 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고 묵묵히 곁을 지켜주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답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직장인들, 학생들처럼 바쁜 일상에서 스트레스 해소와 힐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 외에도 지네, 햄스터, 토끼, 새, 거북이, 곤충, 물고기, 등등의 수많은 반려 동식물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이 중에서 어떤 반려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내용은 상당히 독특한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구원이 아니라 ‘피조물의 구원’에 대해서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내 코가 석 자고 지금 우리는 인간의 구원에 대해서도 말할 시간이 부족한 상황인데, 왜 갑자기 바울은 ‘피조물의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피조물은 인간을 제외한 모든 자연 만물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피조물은 본래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인간처럼 스스로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피조물까지 덩달아 저주받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 말씀입니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이처럼 피조물은 아무 잘못이 없었지만, 그저 아담 때문에 저주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로마서 8장 20절 말씀입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피조물이 저주받아 타락하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의도였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요? 피조물의 처지에서 볼 때는 굉장히 억울한 처사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그에게 청지기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짐승에게 이름을 지어주라’라고 한 것은 단순히 이름만 지어주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관리하고 책임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책임자가 저주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관리하던 피조물들도 함께 저주받게 된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복락을 위해 창조된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영광은 피조물의 영광이 되는 것이고 인간의 타락은 피조물의 타락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타락한 피조물이 구원받으려면 누가 먼저 구원을 받아야 할까요? 인간이 먼저 구원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영광이 곧 피조물의 영광이요 인간의 타락이 곧 피조물의 타락이며 인간의 구원이 곧 피조물의 구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들이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은 인간의 구원입니다. 인간이 구원받아야 자신들도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과 피조물은 운명 공동체(구원에 관하여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이 지금 인간의 구원에 대해서 말하기에도 부족한 지금, 피조물의 구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과 인간, 이 두 대상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 역시 아직 목표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어제 우리는 ‘성도의 견인’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현재의 구원이 마지막 날까지 유지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붙들어 주시는 것! 그것이 바로 ‘성도의 견인’입니다. 즉, 우리는 이미 구원의 증표로서 성령을 받았지만, 아직 완전한 구원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우리 역시 날마다 끈질기게 구원에 이르기 위하여 정진해야 합니다. 정리하면, 운명 공동체인 우리 인간과 피조물들은 구원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이룰 때까지 서로 협력하며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3절입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참 아름다워라’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1)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2)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 해와 저녁놀 밤하늘 빛난 별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다 주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도다 (3)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 들리니 주 하나님의 큰 뜻을 나 알 듯하도다
개나리와 목련 같은 봄꽃이 활짝 열리는 지금 부르기에 딱 좋은 찬송가입니다. 천국에는 우리 인간만 있을까요? 아니면, 식물과 동물, 아름다운 자연도 있을까요? 천국에는 나와 똑같은 사람만 있을까요? 아니면 나와 전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까요? 그것이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만 있거나 우리 인간들만 있다면 그곳은 천국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봄에 피는 아름다운 꽃들처럼 다양한 색깔, 다양한 무늬, 다양한 종류가 있어야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세 번 놀란다고 합니다. 첫 번째, 천국에 반드시 들어와야 할 사람이 없어서 놀라고, 두 번째, 천국에 결코 들어오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 사람이 들어와서 놀라고, 세 번째, 나 같은 죄인이 들어와서 놀란다.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만든 노예 상인 존 뉴톤의 고백입니다.
왜 바울은 인간의 구원에 관해서 이야기하기도 모자란 지금, 피조물들의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을까요? 우리 지금 피조물들의 구원에 관해서 이야기할 만큼 한가한 사람들입니까? 그렇게 한가하지도 않고 마음의 여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 바울이 피조물들의 구원에 대해서 언급하는 이유는 마지막 종말 때의 모습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마지막 종말의 사건은 한 개인의 사사로운 사건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미래가 달린, 대우주적(大宇宙的) 서사시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구원의 문제를 미시적(微視的)으로 보면, 나 한 사람의 고통에 관련된 사사로운 문제이지만, 구원의 문제를 거시적(巨視的)으로 보면, 온 우주의 운명이 걸린 공공의 사안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 대단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근무하는 회사를 경영하는 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지구라고 하는 세상을 다스리는 것, 쉬운 일 아닙니다. 하루도 전쟁의 총성이 멈추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질서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것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와 우리 모든 피조물의 구원 문제를 주관하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이제는 그 관심이 옮겨져야 합니다. 나에게서 피조세계(被造世界)로 이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탄식이 나의 탄식으로 지금 피조세계는 고통 속에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열망으로 울부짖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2절입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러므로 나의 관심이 형제에게, 가족에게, 이웃에게, 타인에게, 그리고 피조세계로 옮겨져야 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장 18절)’ 너무나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입니다. 현재의 고난이 아무리 크고 무겁더라도 그것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삶이 힘들수록 주변을 바라보십시오. 삶이 어려울수록 자기 자신에게 벗어나십시오. 피조물의 구원이 나의 구원이고, 나의 구원이 피조물의 구원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참된 힘과 위로를 얻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동안 나 자신의 문제에만 지나치게 몰두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모든 것이 내 중심이었고 내 마음대로였습니다. 그래서 주변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누가 눈물을 흘리는지 누가 탄식하며 괴로워하는지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눈을 들어 하나님이 만드신 이 피조세계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그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그들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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