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때문에 일어난 일 (로마서 5장 6~11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4월 2일 목요일,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넷째 날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5장 6절부터 11절까지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누구누구 때문에’라는 말은 결코 좋은 의미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너 때문에 죽겠다! 너 때문에 못 살겠다! 너 때문에 너무 힘들다!”와 같이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들려옵니다. 1973년에 발표된 가수 이장희 노래 ‘그건 너’가 금지곡으로 지정된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후렴구의 이 가사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이 곡은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이에 가수 이장희 씨는 곧바로 재심을 청구했지만, 방송윤리위원회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너 때문’이라는 표현은 사회에 불신을 조장하고 불온한 선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재심을 기각했습니다. 이처럼 누구 때문에 라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더 많이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부르는 복음성가 중에 ‘예수님 때문에 형제를 사랑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자매를 사랑합니다’라는 곡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우리 모두 함께 기쁜 찬양 하세! 할렐루야! 할렐루야! 햇빛 같은 기쁨 빗줄기같이! 할렐루야! 할렐루야! 예수님 때문에 형제를 사랑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자매를 사랑합니다.’ 예전에 정말 우리가 많이 불렀던 찬송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누구 때문에’라는 말은 항상 부정적인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우리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매우 중요한 단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누구 때문에’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 때문에 나는 살게 되었고, 그 사람 때문에 나는 구원받게 되었고, 그 사람 때문에 나는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회사의 동료일 수도 있고, 병원의 의사일 수도 있고, 교사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목회자일 수도 있고, 나를 교회로 인도한 전도자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지만 결론적으로 우리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바로 ‘예수님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았고 예수님 때문에 날마다 감사하며 예수님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씀 중의 하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입니다. 즉,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 때문에 일어난 일은 과연 무엇일까요? 함께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 때문에 일어난 일은 ‘하나님의 사랑이 증명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증명되었을까요? 만약 예수님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증명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 이 세상에 예수님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아무리 똑똑한 사람들이 연구를 해보아도 예수님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의 본문 로마서 5장 6절 말씀에 나오는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라는 문장이 바로 그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경건한 자가 아니라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경건하지 않은 자’는 로마서 5장 8절의 ‘죄인’ 그리고 10절의 ‘원수’와 같은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사랑을 초월한 것입니다. 인간세계에서는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도 죽는 일이 없고, 선한 사람을 위해서 죽는 일도 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악한 사람을 위해서 죽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의로운 사람, 선한 사람을 위해서도 죽는 일이 흔치 않은데, 어떻게 악한 사람을 위해서 죽는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고 원수이며 심지어는 하나님을 대적할 때, 자신의 사랑하는 독생자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도덕적인 관점으로 볼 때, 매우 부적절한 행위입니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오히려 악한 원수들에게는 불타는 진노의 심판을 퍼부어야 합니다. 그런 배은망덕한 원수들에게는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퍼부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원수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 사랑의 위대함이 있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죄수가 탈출하자 수용소 측은 본보기로 10명을 굶겨 죽이기로 했습니다. 이에 지목된 사람 중 하나가 “내 아내와 아이들은 어떡합니까!”라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나는 처자식이 없으니 저 사람을 대신 죽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신부는 그를 대신해 아사형(餓死刑)을 당했습니다. 신부를 대신하여 살아난 사람은 “나는 콜베 신부님 때문에 덤으로 사는 인생입니다”라는 고백을 평생 했습니다. 여러분, 콜베 신부님은 ‘선량한 이웃’을 위해 죽었지만,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두 번째, 예수님 때문에 일어난 일은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의 개념을 2단계로 나누어서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현재의 구원’과 ‘종말의 구원’으로 이렇게 두 단계로 나누어서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첫 번째 구원의 단계는 ‘현재의 구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 변화되는 우리의 ‘영적인 신분’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사망에서 생명으로, 죄인에서 의인으로, 죽음에서 부활로 그 신분이 변화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4)’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신분으로 변화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한번 변화된 영적인 신분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새롭게 얻은 구원의 자격을 마지막 심판의 날까지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구원의 단계인 ‘종말의 구원’입니다. 오늘을 살기 위해서는 ‘현재의 구원’이 필요하지만,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종말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이 두 번째 구원인 ‘종말의 구원’은 누가 이루어야 할까요? 이 두 번째 구원 역시 ‘예수님 때문에’ 이룰 수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성도의 견인(堅忍, 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아 새롭게 변화된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끝까지 믿음을 지켜 결국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실성입니다. 이 구원의 확실성조차 우리의 행위가 아닌 예수님의 공로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세 번째 예수님 때문에 일어난 일은, ‘기쁨의 은혜가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단순히 ‘지옥에 안 가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구원은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상황을 이기는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제 어느 권사님께서 기도 제목으로 ‘편안한 삶이 아니라, 평안한 삶을 살게 하소서’라고 올리셨습니다. 편안과 평안은 어떻게 다를까요? 예를 들어, 새벽기도회에 안 나오면 몸은 편안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평안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새벽기도회에 나오면 몸은 피곤하더라도 마음은 평안합니다. 어제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께서 몸살감기로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새벽기도에 나오셨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고단하셨을까요? 평소처럼 힘 있게 걷지 못하는 집사님의 모습에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집사님의 마음은 평안하였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집사님의 몸을 강건하게 고쳐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쁨은 환경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럼 어디서 올까요? 오늘 본문 로마서 5장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쁨은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슬픔 중에도 노래할 수 있고, 고난 중에도 찬송을 부를 수 있는 까닭은 오직 예수님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걱정과 근심은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의 마음을 낙담케 만드는 걱정과 근심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날마다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고난이 없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가 그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 받았고 구원의 확실성을 얻었으며 날마다 기쁨의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고난이 없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가 세상의 고난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어떠한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낙망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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