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경주자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 히브리서 12장 1~2절)
<로마서 12장>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히브리서 12장>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4월 4일 토요일입니다.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여섯째 날입니다. 한 주간, 고난주간 말씀 묵상으로 함께 하신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부활의 은혜가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가운데 충만히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12장 1절과 2절, 히브리서 12장 1절과 2절입니다. <우리는 모두 경주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의 권면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로마서 12장 1절)’ 하나님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바울이 그 권위를 가지고 강한 표현의 경고 말씀입니다. 쉽게 말해서, “그러므로 내가 이제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지금부터 나오는 내용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최종 선포, 최종 경고입니다. 그만큼 지금부터 나오는 내용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는 ‘복음에 대한 이론’을 다루고, 12장부터 16장까지는 ‘복음에 대한 실천’을 다룹니다. 앞부분은 이론 편, 뒷부분은 실천 편입니다. 지금 우리가 묵상하는 로마서 12장은 이론 편입니다. 그것도 실천 편의 첫 번째 문장입니다. 즉, ‘지금까지 다룬 모든 이론을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다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고 영적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산 제물’은 과연 무엇일까요? 제물은 본래 죽은 것인데, 어떻게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가능할까요? 왜 바울은 지금 우리에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죽은 제물로 드리라고 하지 않고 산 제물로 드리라고 했을까요? 산 제물과 죽은 제물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일까요?
산 제물은 영어로 ‘a living sacrifice’ 살아있는 헌신, 자발적인 헌신입니다. 진심 어린 봉사와 섬김을 말합니다. 반면에 죽은 제물은 죽어 있는 헌신, 형식적인 헌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똑같은 순종과 예배를 드릴지라도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자발적으로 예배드리고 있습니까? 여러분, 지금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지금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있습니까?
집이 수원인 어느 권사님께서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하기 위해서 교회에서 주무십니다. 여러분, 이게 억지로 가능할까요? 제가 우리 교회 권사님들에게 반드시 교회에서 주무시고 새벽예배 하라고 한다면 가능할까요? 불가능할 것입니다. 자발적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제가 권사님께 한번 여쭈었습니다. “권사님, 아무래도 집보다는 많이 불편하시지요?” 권사님 뭐라고 답했을까요? “아버지 집이 훨씬 더 편합니다.” 여러분, 자발적으로 드리지 않는 예배, 봉사, 헌신은 반드시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 봉사, 헌신할 때마다 우리의 마음가짐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형식적으로 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뜨거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마음이 냉랭해 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우리의 마음가짐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죽은 제물이 아니라 산 제물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영적인 예배’는 어떤 예배일까요? 여러분 지금 영적으로 예배드리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영적인 예배’는 꿈과 환상을 보는 예배, 미래를 예언하는 예배, 방언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는 예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예배도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그런 역사도 일으키십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영적인 예배는 로마서 1장부터 11장에 나오는 내용을 정리하는 실천적 예배, 합리적 예배, 균형 잡힌 예배를 말합니다. <오직 예수, 오직 기도, 오직 말씀>에 따라 성령 충만한 삶을 살면서 동시에 넘어진 자들을 일으키고 외롭고 사랑받지 못한 자들을 감싸안으며, 울부짖는 자들의 소리를 들어주고 사회제도를 바꾸며, 성실과 정직으로 근무하며 진리를 행하고 진리를 말하며, 언제나 겸손한 태도로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적인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예배란, 주일에 한번 예배당에서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가 직면한 삶의 현장에서 몸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반복적으로 자기의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매 주일 성전에서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로마서 12장 2절 말씀 역시 우리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것에 대한 설명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장 2절)’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개념입니다. ‘마음이 변화되어야만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장 2절)’ 그런데 그 전제 조건이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로마서 12장 2절)’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인간에게는 모방의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우리에게는 무조건 본받으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처럼, 우리는 좋은 것만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도 따라 합니다. 여러분, 어린이들 앞에서 침 뱉고 욕하는 모습 몇 번만 보여주십시오. 금세 따라 합니다. 하지만 어린이들 앞에서 사랑하고 인내하고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면 어린이들도 곧바로 따라 합니다. 즉, 지금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모델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이고 하나는 ‘그리스도’입니다. 이 두 모델은 정반대의 모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어 그리스도를 따라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히브리서 12장 1절과 2절의 말씀도 나누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우리 성도들은 운동장에 모인 달리기 선수들과 같습니다. 여러분 달리기 시합해 보신 적 있으시지요? 초등학교 운동회 때 5명씩 조별로 달리기를 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얼마나 설레셨습니까? 달리기를 잘하든 못하든 그 출발 전의 설레는 상황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즉,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이러한 달리기 시합과 같다는 것입니다. 출발 전의 그 설레는 상황, 관중들의 우람찬 함성, 총성과 함께 달리는 학생들! 어떤 이에게는 이러한 모습이 즐거움으로 다가오지만, 어떤 이에게는 이러한 모습이 부담될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히브리서 12장 1절)’ 이미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이 지금 우리를 향해 열띤 응원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요한 다윗 요셉 라합 기드온 삼손 사무엘 모세 야곱 에녹 노아… 지금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12장의 바로 앞장인, 믿음의 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지금 우리를 향하여 열띤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뭐라고 응원할까요? “신 목사, 조금만 더 힘내! 이제 거의 다 왔어!! 김 장로, 이제 결승선이 코앞이야! 조금만 더 힘내! 이 권사, 하던 대로 쭉 해, 승리가 코앞이야!” 이렇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향하여 열띤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장 2절)’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께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를 격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열띤 응원을 해주시는 허다한 증인들의 특징은 우리와 똑같이 이 고난의 길을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을 이분들도 이전에 건너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실현 불가능한 길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갈 수 있는 실현 가능한 길입니다.
우리가 이 경기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오직 예수만 바라볼 것!’ 둘째, ‘인내할 것!’ 우리는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 두 가지가 다 필요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인내와 세상 사람들의 인내는 무엇이 다를까요? 우리의 인내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목표가 분명한 인내입니다. 오늘 그 목표가 되시는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수많은 증인의 함성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끝까지 인내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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