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4월 11일(토)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시 94:1~23)
    2026-04-10 18:20:37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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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는 하나님의 것 (시편 941~23)

     

    (1)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2)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3)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4) 그들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하게 떠들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자만하나이다 (5)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을 짓밟으며 주의 소유를 곤고하게 하며 (6)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며 (7)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하나이다 (8)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9)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10) 뭇 백성을 징벌하시는 이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 징벌하지 아니하시랴 (11)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12)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13)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을 피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1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 (15) 심판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따르리로다 (16)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들을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악행하는 자들을 칠까 (17)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 (18)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19)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20) 율례를 빙자하고 재난을 꾸미는 악한 재판장이 어찌 주와 어울리리이까 (21) 그들이 모여 의인의 영혼을 치려 하며 무죄한 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리려 하나 (22)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 (23)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로 되돌리시며 그들의 악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들을 끊으시리로다

     

    1. 한국의 어느 영화감독은 복수를 주제로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 영화들을 보면 주인공들이 깊은 분노에 사로잡혀 세상의 법이나 경찰 같은 사회적 시스템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잔인한 복수를 행합니다. 그리고 주인공들 대부분은 끝내 복수에 성공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 복수가 통쾌하기보다 왠지 모를 허무함을 줍니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이런 생각하게 만듭니다. ‘복수란 무엇인가? 사람은 제대로 된 복수를 할 수 있는 존재인가?’

     

    2. 오늘의 본문 시편 94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지금 원수들은 시편의 시인이 속한 나라의 백성을 짓밟고 있습니다. 6절을 보면, 그들이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를 살해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남편이 없는 여인들, 떠돌이 나그네,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가장 연약한 계층이었습니다. 자기의 힘으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원수들은 비겁하게도 가장 연약한 대상들을 골라 잔인하게 죽인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은 깊은 울분에 쌓여 있습니다.

     

    3. 그를 더욱 분노하게 하는 것은, 원수들은 이런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양심의 가책은커녕 오히려 여호와가 보지 못한다라며 거만을 떤다는 것입니다. 이런 불의한 현실 앞에서 시인은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물리적인 방법을 다 동원해서 보복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께서 공정한 심판자가 되어 악인들에게 합당한 형벌을 내려 달라고 간구합니다.

     

    4.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죄를 짓고, 하나님은 끊임없이 그것을 용서해 주신다.” 그렇다면 복수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고 원수 사랑은 하나님의 몫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언뜻 보면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죄 많은 인간에게는 원수를 사랑하기보다 복수하는 게 훨씬 더 쉬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오늘 본문에서 그 반대를 말합니다. ‘복수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그리고 원수 사랑은 우리의 몫이라고 합니다.

     

    5. 하지만 현실은 이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우리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두 배, 세 배로 갚아주어야 직성(直星)이 풀리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냥 참으면 더 만만히 본다는 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이 처한 불의와 어둠의 세상 속에서도 반드시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시편 949절 말씀 보겠습니다.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6.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 한 이야기를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수금을 연주하는 다윗에게 창을 던지고 잠자리에 있을 때 군사를 보내 급습하게 했습니다. 다윗은 몇 번이나 죽을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윗에게도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한 번은 사울이 용변을 보기 위해 동굴에 들어갔는데, 기가 막히게도 그 안에 다윗이 숨어 있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무장해제 된 사울을 단칼에 죽일 수 있었습니다. 또 한 번은 사울이 진영에서 깊은 잠이 들었을 때, 주위 병사들까지 모두 잠든 상황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다윗은 사울을 살려줍니다.

     

    7. 왜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을까요? 사울의 악행을 보면 정의의 이름으로 그를 죽여도 큰 비난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이 비록 악한 왕이라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이기에 자기의 손으로 복수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분이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귀와 눈을 만드신 하나님이 이 불의한 상황을 그저 보고만 있지 않으시리라는 믿음입니다.

     

    8. 실제로 사울은 다윗의 손이 아니라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손으로 이루어진 심판이었습니다. 만일 다윗이 직접 사울을 심판했다면 어땠을까요? 더 이상 도망자가 신세로 살지 않아도 됩니다. 좀 더 빠르게 왕이 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백성의 민심은 온전히 다윗에게 향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고 다윗에게는 장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윗이 직접 복수를 했다면 사울 편에 섰던 무리가 또 다른 복수를 도모했을 것입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끝없는 혼란에 빠졌을 것이 뻔합니다.

     

    9. 여러분, 당장 나에게 물리적인 해를 가하고 악의적으로 인신공격을 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노하고 울분을 느끼듯,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도 동일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무감각하게 우리의 억울함을 보고만 있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수의 칼날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은 우리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제한된 시각과 한계를 가진 인간에게 복수의 칼날이 주어진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끔찍하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쉽지 않지만, 복수는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과정을 다 지켜보시고 우리 마음까지 다 헤아리고 계심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복수는 주님의 것입니다. 당신의 방법으로 심판하여 주옵소서.”

     

    기도문) 하나님,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도 이 모든 상황을 주님이 지켜보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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