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5월 15일(금)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고전 3:1~15)
    2026-05-14 12:57:36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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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고린도전서 31~15)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515일 금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31절부터 15절까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초대 교회라고 하면 완벽한 공동체의 모습을 떠올리곤 합니다. 현대 교회의 분열과 갈등에 지칠 때면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라고 외치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마주한 고린도 교회의 모습은 그러한 낭만을 산산조각 냅니다.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고린도 교회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많은 공동체였습니다. 분열과 파당, 도덕적 타락, 은사의 남용, 예배의 무질서, 부활에 대한 불신, 마치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한곳에 모아 놓은 쓰레기 매립지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읽다 보면 사람 사는 곳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구나라는 씁쓸한 심정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우리에게 절망이 아닌 소망이 되는 이유는 우리 인간의 본성이 과거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은혜 또한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진 고린도 교회를 회복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또한 반드시 인도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오늘의 본문 고린도전서 31절과 2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뼈아픈 진단을 내립니다. 정말 우리가 이런 말을 들었다면 굉장히 자존심 상하고 상처받았을 것입니다.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자신들을 영적인 사람들, 대단한 존재로 여겼지만, 바울의 눈에는 그저 밥이 아닌 젖이나 먹는 영적 아기들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것도 대단히 잘 봐주어서 영적 아기들이지 실제로는 어제 본문에 나왔던 육신에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육신에 속한 자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는 자들입니다. 이방인들, 불신자들입니다. , 고린도 교인들은 믿지 않는 이방인들과 똑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도 이러한 평가가 내려졌다면 우리는 얼마나 기분이 상할까요? “목사님! 목사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이런 말을 들었다면 얼마나 화가 나고 속상할까요? 그동안 신앙 생활한 게 몇 년인데, 그동안 교회를 다닌 게 몇 년인데, 그동안 봉사한 직분만 몇백 가진데, 불신자와 똑같다니, 너무나 기가 막힐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놓고 기분 나빠 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우리가 그런 사람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가 신령한 자인지, 육에 속한 자인지 구별하는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를 바라보며 신앙생활 하는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신앙생활 하는가? 아니면 사람들을 바라보며 신앙생활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 해도 사람을 바라보며 신앙생활 하면 아직 영적 아기입니다. 아무리 많은 봉사를 해도 사람을 바라보며 신앙생활 하면 아직 육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사람을 바라보며 신앙생활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파다.” “나는 게바파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마치 목회자들을 정당 대표나 아이돌 가수처럼 취급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수요 말씀사경회 때 어떤 목사님이 설교하시는가? 금요 기도회 때에 어떤 전도사님이 설교하시는가?’에 따라 참석하기도 하고 불참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 공공연하게 어떤 목회자가 설교를 더 잘하는지, 어떤 목회자가 인물이 더 좋은지, 어떤 목회자가 뛰어난 능력을 갖췄는지 이야기하며 호불호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돌 가수의 팬들처럼 좋아하는 목회자가 다르면 서로 견제하고 질투했다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는 교인끼리 모여서 이런 이야기를 경우가 왕왕 일어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을 바라보며 분파가 나뉘어져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한 자가 아닌, 육신에 속한 자라는 증거입니다. 아무리 바울이 능력이 뛰어나고 아무리 아볼로가 설교를 잘해도 교회를 성장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하나님의 일꾼에 불과합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인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라고 할 때 동역자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디아코노이(διάκονοι)’ ‘섬기는 자’ ‘을 의미합니다. , 그들은 하나님의 종이므로, 오직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만 움직입니다. 복음 사역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고 바울과 아볼로는 그것을 보조하는 직원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인공은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직원들에게만 관심갖는다면, 우리는 대단히 어리석은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만약 어떤 목회자가 교회를 처음 개척해서 10만 명이 넘는 교회로 부흥시켰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신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지, 자신이 한 일이 아닙니다. 그는 그저 하나님의 사역을 보조하는 직원일 뿐입니다. 이것을 망각하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의 몇몇 대형 교회들이 세상으로부터 모진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바울이 성도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린 것도 아니고, 아볼로가 성도들을 위해 부활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이리 가라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가는 종들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 역할의 성실성에 따라 장차 심판을 받거나 자기의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땀 흘리는 동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직분은 교회를 위한 섬김의 도구이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기 위한 지배의 도구가 아닙니다. 만약 어떤 집사님과 어떤 권사님이 장로가 되었다면, 그것은 회사처럼 승진한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다른 차원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직분자(職分者)로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만약 어떤 전도사님이 목사안수를 받았다면, 그것은 교회 안에서 다른 차원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직분자로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 모든 직분은 하나님의 종’, ‘디아코노이로서 그 사역의 종류가 다른 것이지 그 권위의 크고 작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건축의 비유로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우리 인생의 기초와 우리 교회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다른 기초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기초 위에 각자의 공적을 쌓아갑니다. 문제는 어떤 재료로 이 건물을 짓느냐?’입니다. 여기 성전을 지으려고 운영위원들이 모였습니다. 여기 교회를 재건축하기 위해 운영위원들이 모였습니다. 어떤 재료로 성전을 지어야 할까요? 어떤 재료로 교회를 지어야 100년이 넘도록 그 견고함을 유지할까요? 금과 은, 보석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진실한 사랑으로 세운 건물은 영원토록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나 풀, 짚과 같은 육신의 정욕, 시기와 분쟁으로 건물을 짓는다면 그 건물을 금세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자재의 가치평가는 그것이 고난을 견뎌내느냐 견뎌내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조금 비싼 자재라도 혹독한 고난을 견뎌낼 수 있다면 그것은 대단히 훌륭한 재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 가치를 드러낼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이루어집니다. 어떤 교우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엄청난 칭찬을 받게 될 것이고, 어떤 교우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엄청난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구원은 똑같다고 말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만큼은 분명히 창피한 구원, 부끄러운 구원도 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15절이(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바로 그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 모든 것이 홀랑 다 타버려서 알몸만 남은 그런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런 부끄러운 구원을 당하지 않도록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주님의 사명을 우리 모두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함께 섬기라고 부름을 받은 동료들입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만을 높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영원히 변치 않을 성전을 지어가는 우리 모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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