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6월 1일(월)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고전 11:1~16)
    2026-05-31 16:31:59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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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고린도전서 111~16)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6)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보통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합니다. “마음이 생기면 하겠습니다.” “생각이 정리되면 그때 시작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뀐다고 믿습니다. 내 마음에 감동이 오고, 내 머리로 완전히 이해되어야 비로소 손과 발이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정말 그렇던가요?

     

    심리학에 아주 흥미로운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만화를 보여주면서, 볼펜을 입에 물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입에 문 볼펜 때문에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었던 사람들이 훨씬 더 재미를 느꼈다고 합니다. 실제로 행동을 바꾸니 생각과 감정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생각이 행동을 바꾸기도 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행동생각과 감정을 바꿀 때가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오늘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바로 이 놀라운 영적 원리를 선포합니다. 머리로만 신앙생활 하던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바울은 이렇게 외칩니다. “그만 생각하고, 이제 몸으로 순종하십시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11절을 다 함께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여기서 바울은 나를 본받아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보통 제자라고 하면 깊은 신학적 진리를 깨닫고 고차원적 인격을 닮아가는 것을 생각합니다. 헬라어로 제자를 뜻하는 말이 마데테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사용한 단어는 마데테스가 아니라, ‘흉내 내다, 모방하다라는 뜻을 가진 미메테스입니다. 쉽게 말해, 어린아이가 부모의 걸음걸이를 따라 하듯,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라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지식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말도 잘하고 아는 것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은 달랐습니다. 교회 안에서 파당을 짓고, 싸우고,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머리는 커졌는데, 손과 발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고린도전서 113절 말씀을 통해 다시 절제하는 행동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여성들이 예배드릴 때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 남성들의 머리 길이에 대한 종교적 관례를 이야기합니다. “너희의 지식과 생각이 아무리 옳다 한들, 공동체의 유익과 하나님의 질서를 위해 수건을 쓰는 구체적인 절제의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자유를 외치지 말고, 이타적인 사랑의 행동을 몸으로 먼저 나타내라는 권면입니다.

     

    이 원리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뜨겁게 적용되어야 할 곳이 어디겠습니까? 바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가정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남편을 향해, 아내를 향해, 자녀를 향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합니까? ‘남편이 말 한마디만 예쁘게 하면 내가 사랑해 주지’ ‘당신이 먼저 변하면 나도 바뀔 거야상대방이 내 마음에 들게 행동해야 비로소 내 마음이 움직이고, 내 마음이 움직여야 사랑의 행동을 하겠다고 버팁니다. 그러나 오늘의 성경 본문이 말하는 영적 원리는 정반대입니다. 마음이 없거나 감정이 생기지 않아도, 말씀이 그러하다면 먼저 사랑의 행동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고 말씀대로 먼저 사랑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의 차가웠던 마음이 바뀌고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뜻대로 빚어지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기독교인인 가수가 방송에서 아내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내 아내는 딱 내가 사랑하는 만큼 아름다워집니다. 내가 왕이라면 내 아내를 왕비처럼 대해주어야 합니다. 내가 아내를 왕비처럼 대할 때, 비로소 나도 왕이 되는 것입니다.”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고백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성경 지식이 아닙니다. 더 고차원적인 영적 지혜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눈 딱 감고 내딛는 작은 순종의 행동 하나입니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늘 마음이 생기면 순종하겠다고, 환경이 바뀌면 사랑하겠다고 핑계를 대며 머리로만 신앙생활을 해왔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오늘 바울을 통해 주신 말씀처럼, 이제는 생각을 멈추고 손과 발을 움직여 순종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내 감정이 메말라 있을지라도 말씀을 따라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먼저 사랑의 행동을 아낌없이 베풀게 하옵소서. 우리가 한 걸음 내디딜 때, 우리 마음을 바꾸어 주시고 우리 가정을 천국으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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