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려면 (고린도전서 9장 19~27절)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5월 28일 목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9장 19절부터 27절까지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려면>이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고린도전서 1장 8절)’ 지난 주일 과제를 내드린 고린도전서 1장 8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한 번 더 깊이 묵상하시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필사하셔서 구역장님에게 금요일까지 카톡으로 꼭 제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복음 전파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과 희생을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려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자세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9절에서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는 충격적인 선언으로 말씀을 시작합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로마 시민권자로서 인간적으로나 법적으로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권리를 자신의 유익이나 편안함을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자유를 반납하고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의 ‘종’이 되기로 선택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바울은 그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종의 삶을 살았는지 설명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되었고 이방인들에게는 이방인과 같이 되었으며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그 사람의 모습과 똑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지조가 없거나 가치관이 흔들리는 사람이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과 지식과 생각을 다 내려놓고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려면’ 우리의 권리와 익숙함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문화와 언어, 편안함을 고집하면서 불신자들에게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적 전도가 아닙니다. 진정한 복음의 능력은 우리가 그들의 삶의 자리로 내려가 그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며 그들의 아픔을 함께 짊어질 때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 그들을 우리처럼 만들려고 하지 말고 우리가 그들처럼 낮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것처럼, 중국인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중국말로 전해야 하고 일본인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일본말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한국말을 배우라고 해서 그들이 다 배우면 그때 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복음을 위해 우리 자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고린도전서 9장 23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바울에게 복음은 단순히 전달해야 할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신문이나 뉴스처럼 그저 누군가에게 전달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은 그의 삶 그 자체였고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영광스러운 복음의 능력에 직접 참여하기를 갈망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단순히 교인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복음이 가져올 그 놀라운 생명의 역사,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와 변화되고 그로 인하여 삶이 회복되는 그 영광스러운 현장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우리의 귀한 시간과 물질을 헌신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복음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달리기 시합’ ‘권투 시합’으로 설명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린도전서 9장 24절)’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상을 받기 위해 달려야 하는 선수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달리기와 영적인 경주의 차이점은 세상의 달리기는 그 우승자가 단 한 명이지만, 영적인 경주는 ‘결승점을 통과하는 모든 사람이 우승자’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결승점을 통과하면 우승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고린도전서 9장 25절 말씀처럼, 성도들이 우승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훈련과 절제를 감내해야 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대의 운동선수들은 세상의 영광을 얻기 위해 피나는 훈련과 고통을 감내하였습니다. 식단을 조절하고 잠을 줄이고 육체의 고통을 이겨냈습니다. 하물며 썩지 아니하고 영원히 빛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역시 우리의 편안함과 안일함을 다 챙기면서 영적인 경주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고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어 우리가 평소 어떻게 훈련하고 연단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9장 26절)’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잘못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면 우승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에게 아무리 강력한 주먹을 날려도 허공을 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힘만 빠집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목표가 분명한 신앙생활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가 단순히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것입니까?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여 그가 복음의 능력으로 치유되어 영광스러운 복음의 삶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목표입니다. 이 목표를 상실하면 우리의 헌신은 ‘방향 없는 달음질’이 되고, 우리의 열정을 ‘허공을 치는 주먹’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우리의 삶이 이러한 목표를 지향(志向)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왜 오늘 우리가 인내해야 하고 절제해야 하며 특권을 포기해야 하는가? 왜 오늘 우리가 희생해야 하고 용서해야 하며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가? 왜 오늘 우리가 다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 낮아져야 하는가? 왜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변화되어야 하는가? 바로 영광스러운 복음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도 그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고린도전서 1장 8절)을 다시 한번 확신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가 영원한 상급을 바라는 경주자임을 깨닫게 하시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우리의 자유를 기꺼이 내려놓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