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누룩을 제거하는 법 (고린도전서 5장 1~13절)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5월 19일 화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5장 1절부터 13절까지입니다. <묵은 누룩을 제거하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예전에 어떤 교회를 우연히 방문했다가 그 교회 정문에 ‘000 씨를 이러이러한 이유로 출교 처리합니다.’라는 대자보가 붙어 있어서 엄청나게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전체적인 맥락을 모르는 저로서는 교회 정문 앞에 그런 대자보가 붙어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고 보기에도 크게 불편했습니다.
오늘 본문(고린도전서 5장 1~13절)의 내용이 ‘출교(黜敎)’에 대한 내용입니다. 출교란, 교회 내에서 무언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성도를 교회 밖으로 내어 쫓는 것입니다. 총회 헌법 권징(勸懲) 제5조 2항과 3항에 따르면 교인을 대상으로 내리는 책벌은 모두 네 가지인데, 첫 번째는 견책(譴責), 두 번째는 수찬정지(受餐停止), 세 번째는 제명(除名),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가 바로 ‘출교(黜敎)’입니다. 출교는 권징 조례 가운데 가장 무거운 형벌이며 해당 교회의 성도로서의 모든 권리와 회원권을 영구히 박탈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중 고린도전서 5장 1절과 2절, 그리고 13절에서 바울은 이러한 출교를 명령합니다.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교회 내에서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사람은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출교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자기 아버지의 첩, 계모와 관계를 맺은 것을 말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살아있는 계모와 결혼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구약성경이 용납하지 않는 매우 혐오스러운 범죄입니다. 신명기 27장 20절은 ‘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압살롬이 자기의 아버지인 다윗의 후궁들과 관계를 맺은 것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엄연한 범죄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끔찍한 죄를 범한 성도가 자신의 부끄러움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것이고 신앙 공동체 또한 이러한 범죄를 묵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죄를 범한 사람은 자기의 범죄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더 교만해졌고, 오히려 교회공동체를 공격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바울은 그를 반드시 출교하라고 강력한 명령을 내리는 것입니다. 즉, 출교라는 명령은 사소한 교리적 이견이나 성도 간의 개인적 갈등, 혹은 목회자의 방침에 대한 불순종 같은 사소한 이유로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성범죄, 심각한 재정 횡령, 공동체를 파괴하는 이단 포교 등 누가 봐도 명백하고 중대한 윤리적·법적 범죄에만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죄를 범할 수 있고 누구든지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고 실수를 한 뒤에는, 반드시 그 죄를 뉘우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음행의 죄를 범하여 출교를 명령받은 그 사람에게는 전혀 회개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의 교회는 이러한 바울의 명령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고 어떤 방법으로 출교를 실행해야 할까요? 만일 오늘날의 교회가 누군가를 반드시 출교해야 한다면,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단계적 권징(勸懲)을 활용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권징의 첫 단계로, ‘개인적으로 권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사자에게 조용히 찾아가 문제를 지적하고 돌이킬 기회를 주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로 예수님은 ‘증인을 동반하여 권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개인적인 권고를 듣지 않으면 ‘두세 명의 증인’을 데리고 다시 가서 권고하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공동체의 개입’입니다. 이때는 당회와 같은 공식적인 치리 기구가 교회를 대표하여 최종 권고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인내의 과정을 거쳤음에도 끝내 거부할 때는, 최종 단계로 비로소 ‘공동체의 이름으로 출교’를 선언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야만 법적·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출교의 본질적인 목적은 ‘심판’이 아닌 ‘회복’에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 고린도전서 5장 5절에서 출교의 목적을 이렇게 밝힙니다.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출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심판과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죄를 범한 자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아오게 하려는 데 출교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징계 중인 성도의 회복을 위하여 지속적(持續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출교는 ‘당신은 이제 끝입니다’라는 최종적 선언이 아니라 ‘속히 회개하고 돌아오십시오’라는 회복의 선언인 것입니다. 따라서 공동체는 그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실제로 바울은 고린도후서 2장에서 (음행한 인물과 같은 인물로 추정되는) 그 사람이 충분한 징계를 받고 돌아오게 되면 그를 용서하고 위로하라고 권면합니다. 이처럼 교회는 죄인이 자신의 죄를 뉘우쳤을 때는 언제든지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는 회복의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본문 고린도전서 5장 6절에서 ‘죄를 방치하면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듯, 공동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현실적으로 오늘날의 교회가 치리와 권징, 출교하는 일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치리와 권징과 출교를 해야 함에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이것을 기피(忌避)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은, 종교의 자유와 이동이 보장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 교회에서 출교당해도 ㉯교회로 옮겨 가면 그만이기 때문에, 출교가 진정한 회개나 자성으로 이어지기보다는 단순히 ‘소속을 바꾸는 일’로 전락하여 그 실효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출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성도 사이에 이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징계의 정당성을 두고 교회 내 파벌이 생기거나 그러한 결정에 회의를 느껴 교회를 떠나는 교인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그 과정에서 개인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하여, 당사자가 사회 법정에 교회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을 겪게 되면, 그야말로 교회는 예배와 선교와 전도와 같은 순기능은 모두 잃어버리고 분쟁과 다툼에 싸여 존립조차 어렵게 될 수 있기에 교회는 쉽게 치리와 권징과 출교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일을 정당하게 하고 해야 할 말을 하는 교회공동체가 되려면, 당회라는 교회 내 가장 중요하고 권위 있는 치리 기구에 온 교우들이 순종해야 합니다.’ 만약 당회보다 힘이 더 센 사람이 있다면, 당회보다 목소리가 더 큰 사람이 있다면, 그 교회는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 교회는 산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당회가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당회가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당회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큰 권위를 부여하신 조직입니다.’ 교회 안에 당회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진 조직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온 교우들은 당회를 신뢰하고 그 결정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 청파동 교회가 지난 46년 동안 평안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당회가 중심을 잘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청파동교회 열 분의 당회원들이 항상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기도와 말씀으로 충만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셔야 합니다. 당회가 성경을 따라 권위 있는 결정을 내리고 온 교우들이 믿음으로 순종할 때, 교회는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는 올바른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청파동교회가 더욱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청파동교회를 여기까지 인도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당회를 중심으로 교회가 더욱 견고히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