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5월 25일(월)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고전 8:1~13)
    2026-05-24 19:58:19
    청파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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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은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공동체를 세웁니다. (고린도전서 81~13)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오늘 본문(고린도전서 81~13)은 고린도 교회가 가진 문제 중 하나인 우상의 제물에 대한 말씀입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의 시장에서 유통되는 고기의 대부분은 이방 우상의 신전 제사에서 사용된 것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아무 고민 없이 우상 신전에 바쳐졌던 고기를 먹었는데, 이제 예수님을 믿게 된 이후 고린도 교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한 부류는 우상의 제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쪽이었습니다. 이들은 오늘 본문에서 믿음이 약한 자로 소개되는데, 이제 막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일종의 우상 숭배로 생각했습니다. 반면 지식 있는 자로 소개되는 이들은 그 고기를 자유롭게 먹었습니다. 이들은 우상이 실제 존재하지 않고, 모든 음식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신학적 지식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고린도 교회 안에서 적지 않은 의견 충돌과 갈등으로 이어졌습니다. ,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되는지, 먹으면 안 되는지의 문제로 서로를 정죄하거나, 또는 깔보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전서 81절을 시작하며 분명한 원칙을 제시합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바울은 누구의 생각이 맞고 틀렸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우상 신전에 바친 제물을 믿음으로 먹어도 되는지, 먹으면 안 되는지를 단호하게 선을 그어서 말씀하지 않습니다. 다만 교회 안에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지 말고 사랑함으로 을 세우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가 ()’입니다. 사실 이란 단어는 동양적인 문화, 그중에서도 유교에서 많이 언급되는 단어입니다. 흔히 마음이 넉넉하고 관용이 있어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사람을 향해 “000은 덕이 있어라고 말합니다. 넓게 보면 의 헬라어 원어 오이코도메오(oikodomeo)’라는 단어의 의미도 이와 통합니다. ‘오이코스(oikos)’데모(demo)’라는 단어가 합쳐진 단어인데 오이코스, 가족을 뜻하고 데모건축하다, 짓다를 뜻하는 동사입니다. 직관적으로 이 단어의 의미가 떠오르실 겁니다. 벽돌을 한 장씩 쌓아서 건물을 세워가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는 새로운 가족을 세우다.’ ‘생명력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다라는 의미로 확장됩니다.

     

    따라서 바울의 사랑은 덕을 세운다라는 말은, 교회 안에서 먹는 문제로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지 않고 넓게 품어주는 자세, 곧 덕을 나타내는 것이 교회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워간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문제가 있을 때마다 무조건 은혜로 합시다’ ‘덕을 세웁시다라고 하며 양비론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우리 신앙인들이 목숨 걸고 사수해야 할 진리의 문제는 타협하거나 적당히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갈등은 이런 절대적 진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부분 상대적 가치 또는 문화적 관습의 영역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우상에게 바친 제물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굳이 신학적으로 따지자면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 숭배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세상에 많은 신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있지만 그것은 다 허상이고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84~6). 그럼에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바울은 이 문제를 절대적 가치의 영역이 아니라 상대적 가치와 문화적 영역으로 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우상 숭배처럼 여겨서 먹지 않겠다고 할 때, ‘너희는 왜 믿음이 없느냐?’ ‘왜 신학적 지식이 없느냐?’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고린도전서 88~9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이 말씀은 오늘 우리 시대에도 정확하게 적용됩니다. 술과 담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국 기독교 전통에서 그리스도인, 특히 중직자(重職者)들에게 음주와 흡연은 삼가야 하는 덕목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한국의 기독교 문화 아닙니까? 예수님도 알코올(alcohol)이 들어간 포도주를 마셨고, 외국 기독교 중에는 맥주를 마시며 모임을 하는 곳도 있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던 것이 미국 신학교에서 저녁 연회를 할 때 교수님과 학생들이 맥주를 나눠 마시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위 믿음이 좋은 자들, 이런 지식이 있는 성도들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음주와 흡연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오랫동안 금주와 금연이 신앙인의 당연한 자세라고 배운 분들이 시험에 들게 됩니다. 또 이분들은 음주와 흡연을 하는 분들을 정죄하기 쉽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음주와 흡연은 우리 성도들이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절대적 진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서로 존중하며 포용해야 할 상대적이고 관습적인 영역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서 우리는 이런 본질적이지 못한 문제를 가지고 우리끼리 다투고 정죄하며 분열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본질적이지 못한 상대적인 문제를 절대적인 진리로 격상시키고, 정작 지켜야 할 절대적 사랑의 계명은 상대적 문제로 격하시키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마지막 고린도전서 813절의 바울의 고백은 우리 모든 성도가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며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여러분, 우리가 내세우는 신앙적 가치가, 진리의 영역이므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타협을 해서는 안되는 것인지, 아니면 유연하게 복음의 큰 그릇으로 담아낼 수 있는 것인지 분별하시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 허락된 정당한 자유와 권리라 해도, 그것이 누군가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고 신앙의 토대를 무너뜨린다면, 기꺼이 그것을 바울처럼 포기할 수 있는 덕이 있는 신앙인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문)) 하나님, 그렇습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우리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또한 나와 다른 신앙의 가치를 가진 이를 정죄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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