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5년 6월 12일(목)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 (시편 73편 1~14절)
    2025-06-11 17:57:45
    관리자
    조회수   59

    왜 할렐루야 축구단은 패배했을까? (시편 731~14)

     

    [아삽의 시]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10)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5612일 목요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시편 731절부터 14절까지입니다. <왜 할렐루야 축구단은 패배했을까?>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헤만과 아삽과 에단, 이 세 사람은 다윗왕 시절, 성전에서 예배와 음악을 담당했던 대표적인 찬양 인도자들입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레위 지파였고 동료관계였으며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 시편에 기록을 남겼습니다. 헤만은 시편 88편을, 에단은 시편 89편을, 아삽은 시편 50편과 시편 73편부터 83편까지, 모두 열두 편의 시편을 기록했습니다. 이 세 사람 중에서 가장 많은 시편을 남긴 사람은 아삽이었습니다. 오늘의 본문 시편 73편을 기록한 사람은 바로 그 아삽입니다.

     

    시편 73편은 신앙과 현실의 괴리(乖離) 속에서 그가 깨달은 소중한 진리를 우리에게 전합니다. 만약 오늘의 본문이 없었다면 우리 역시 그러한 상황에서 매우 큰 영적 시험을 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본문의 내용을 함께 살펴 가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오늘은 새번역 성경을 인용하여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먼저 1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먼저, 1절에서 시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대원칙을 공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마음이 정직한 자와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깨끗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우리의 외면이 아닌, 우리의 내면을 가꾸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절에서 시인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습니다.

     

    ‘(2)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시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그 신앙의 원칙과 현실의 모습이 너무나도 달라, 견딜 수 없는 충격을 받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그 충격이 컸던지 그는 걸음을 걷기가 어려울 정도이고 온몸이 길바닥에서 쓰러질 정도입니다. 그는 그 충격으로 말미암아, 그의 존재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체 시인은 어떠한 일을 경험했던 것일까요? 3절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3)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그는 반드시 멸망 당해야 할 악인들이 오히려 형통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충격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4절 이하의 말씀은 그러한 악인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고발합니다. 그들은 매우 건강한 데다 죽을 때마저도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 특별한 재앙은 차치하고 일반적인 고난도 그들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신분과 위세를 떨치고, 이웃에게 강포(强暴)를 행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7절은 조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7)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쪄서, 거만하게 눈을 치켜뜨고 다니며, 마음에는 헛된 상상이 가득하며

    무슨 의미일까요? 그들이 물질적 풍요로 인해 눈이 어두워져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약 같은 환각제에 중독이 되어 헛된 망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8절과 9절도 그들의 만행이 고발되는데, 주로 말로써 이웃을 해하고 괴롭힙니다. 8절과 9절입니다. ‘(8) 언제나 남을 비웃으며, 악의에 찬 말을 쏘아붙이고, 거만한 모습으로 폭언하기를 즐긴다. (9) 입으로는 하늘을 비방하고, 혀로는 땅을 휩쓸고 다닌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10절의 내용입니다. 돈은 많고 힘은 셀지라도 그렇게 어리석은 모습으로 막말하며, 헛된 환상 가운데 살아가는 저들을 일반 백성들이 부러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멀리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모습을 인생의 모델로 삼고 그들처럼 되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 악인들의 주위에는 끊임없이 그들의 콩고물을 받아먹으려는 기회주의자들이 몰려 있다는 것입니다. 10절의 내용은 그들의 주변에 머물면서 그들로부터 떨어지는 콩고물을 먹으려는 기회주의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10) 하나님의 백성마저도 그들에게 홀려서, 물을 들이키듯,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11) 덩달아 말한다.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무엇이든 다 알 수가 있으랴?” 하고 말한다.’

     

    이처럼 기회주의자들은 악인들과 하나 되어 하나님을 부정합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들이 더 높다고 말하며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12절은 지금까지 기록된 악인들의 형통함을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12)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가 악인인데도 신세가 언제나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구나.’ , 악인들은 재물, 건강, 권력, 명예를 포함한 모든 사회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에서 형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모든 측면에서 형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오늘의 시인 아삽처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난과 재난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13)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내 손으로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14) 하나님, 주님께서는 온종일 나를 괴롭히셨으며, 아침마다 나를 벌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잘 믿는 신실한 사람들은 고난 가운데 있고, 하나님을 무시하며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은 너무나 잘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신앙의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오늘 설교의 제목은 <왜 할렐루야 축구단은 패배했을까?>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할렐루야라는 이름을 가진 실업 축구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유니폼에는 십자가가 그려져 있고, 골을 넣을 때마다 기도하는 세리머니(ceremony 어떤 일을 축하하기 위해 벌이는 의식)를 하였습니다. 아마도 모든 선수가 기독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때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도우시니 할렐루야 축구단은 항상 승리만 하겠지!” 그러나 아버지의 답변은 전혀 달랐습니다. “아무리 할렐루야 축구단이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패배할 수 있단다!” 저는 그때 그 대답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니 항상 승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백전백승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왜 할렐루야 축구팀은 항상 승리할 수 없었을까요? 여러분, 이 세상에서의 실패와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물질적 승리를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적 승리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할렐루야 축구팀의 패배는 하나님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실력이 상대편의 실력보다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기도도 해야겠지만,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승리하려면 세상의 원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나라에서 승리하려면 하나님의 원리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에서 진정 승리하기를 원합니까? 기왕이면 둘 다에서 승리하기를 원하겠지요? 그러나 이 두 가지가 충돌할 때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진정한 성도는 세상에서 실패할지라도 하나님 나라에서 승리하는 방법인 말씀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세상에서 실패하라는 말이 아니라 세상의 원리와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충돌할 때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보고 그대로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성공하기 위해 그들의 방법을 선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삶의 기준을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우선순위와 삶의 기준을 하나님 나라에 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 안에는 두 가지의 싸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승리할 것인가? 하나님 나라에서 승리할 것인가? 세상에서의 승리가 너무나 달콤하기에 하나님 나라를 포기할 때가 있고, 세상에서의 승리가 너무나 영광스럽기에 하나님 나라를 포기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그런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의 원리와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충돌할 때 하나님의 원리인 말씀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과 인내와 용서와 감사를 선택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