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5년 6월 13일(금)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 (시편 73편 15~28절)
    2025-06-12 14:17:58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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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복이라 (시편 7315~28)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제가 몇 년 전쯤에 시력 교정 시술을 받았는데, 혹시 라섹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각막을 레이저로 깎아서 멀리 있는 걸 잘 보이게 해주는 시술입니다. 사람마다 통증의 정도가 다르고 약 3일 정도 아프다는 것을 알고 시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참 불행하게도 저는 통증을 매우 심하게 느끼는 사람이었습니다. 눈에 모래를 뿌리고 문지르는 것 같은 고통이 쉬지 않고 이어지자, 나중엔 몸살이 왔습니다. 3일만 참으면 된다는 걸 알았지만 그 3일 후가 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반면에 재밌는 16부작 드라마 한 편을 쭉 몰아볼 때는 어떻습니까? 시간이 금방 갑니다. 빠져들어서 보다가 배고파서 시계를 보면 어느새 저녁입니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은 참 상대적입니다. 고통을 통과하는 시간은 너무나 괴롭고 더디 흐릅니다. 아무리 큰 행복감을 느껴도 그것이 영원하지 않고, 어떤 어려움도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내가 직접 부딪치면 이 고통의 시간이 영원할 것만 같은 생각을 떨쳐내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시편 73)의 주인공 아삽은, 심한 고통 중에 있습니다. 16절입니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아삽이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은 전반부에 소개되어 있는데, 한마디로 하면 악인의 형통함입니다. 성경에서 악인은 범죄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아삽은 어떤 사람인가요? 시편 731절을 보면 자기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마음이 정결한 자마음이 정결하다는 것 역시, 성경에서 의미하는 바는 착한 사람, 인성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사람, 예배의 자리에 나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경건을 추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아삽이 거의 넘어질 뻔했고 미끄러질 뻔했으니, 그 이유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질투가 났기 때문입니다. 아삽의 신앙이 휘청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날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려 애쓰며 살아가는데, 내 삶은 왜 이리도 고될까?. 반면에 하나님을 단지 안 믿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업신여기기까지 하는 저 악인들의 인생은 너무도 평안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선하시고 전능하시다면, 어째서 이 상황을 보고 만 계실까?!’ ‘하나님은 없거나 있다고 해도, 악하거나 전능하지 않은가 보다!’ 하나님께 벌을 받아 마땅한 악인들은 평안하고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셔야 할 약자들은 종일 재난을 당하는 현실을 신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답을 찾지 못해, 내적 갈등을 겪다가 신앙을 버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아삽도 흔들렸습니다. 시편 7313절입니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마음을 깨끗하게 했다는 것은 마음을 정결하게 했다. 늘 하나님을 예배하는 경건한 삶의 자리를 지켜왔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노력이 다 헛되도다! 내가 쓸데없는 짓을 했다! 하나님 잘 믿고 기도 열심히 해도 소용이 없구나!’하는 상실감과 좌절감이 아삽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더 나아가 시편 7315절을 보시면,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라고 합니다. 저 악한 무리가 하는 말, “하나님이 뭘 알겠어! 하나님이 있긴 뭐가 있어!” 자신도 이 말을 할 뻔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참 다행인 것은 아합의 신앙이 그런 불신의 상태까지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인가요? 시편 7317절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아삽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모든 것을 새롭게 이해하는 극적인 인식의 전환을 경험합니다. 삶에 대한 관점, 힘의 근거, 믿음의 고백 모두가 바뀌면서 아삽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시편 7317절을 다시 보시면, ‘아삽이 들어간 하나님의 성소라고 할 때 성소복수로 쓰였는데, 이렇게 쓴 이유는 아삽이 계속해서, 꾸준히 하나님의 성소에 나아갔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삽은 세상의 불의함과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바라보며 불평만 한 것이 아니라, 경건 생활을 꾸준히 이어가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마음의 어려움, 고난의 상황을 토로했다는 의미입니다.

     

    상황이 어떠하든, 마음 상태가 어떠하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자 발버둥 쳤던 아삽은, 꾸준한 경건 생활을 이어가던 중, 문득 악인들의 마지막을 깨닫습니다. 그들이 발 디디고 선 권력과 평안의 자리가 이제는 미끄러워 보입니다. 그들의 평안은 눈 깜짝할 사이에 미끄러져 파멸에 이를 한시적인 평안이었고 곧 빼앗길 권력이었습니다. 악인들의 운명을 본 아삽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을 성찰합니다. 그리고 자신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은 존재라고 고백합니다. 시편 7322절입니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아삽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지 못하고 세상의 형편을 바라보며 불평하고 원망하던 자신이 짐승처럼 우매하고 무지했음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참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의 손을 붙들고 계셨습니다. 시편 7323절입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아삽은 불의한 현실을 바라보며 그 신앙이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악인들이 하는 말을 똑같이 할 뻔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고꾸라지지는 않았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아삽의 오른손을 붙들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삽은 연약한 우리가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며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은 필요가 없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7325절입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이전에는 악인의 형통을 보며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제는 하나님만이 나의 가장 큰 기쁨과 소망이 됨을 마음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깨달은 바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28절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이렇게 우리 믿는 자들에게 참된 복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꾸준히 경건의 생활을 이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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