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배나 갚으소서 (시편 79편 1~13절)
[아삽의 시] (1)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2)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3)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4)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 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 거리가 되었나이다 (5)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6) 주를 알지 아니하는 민족들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들에게 주의 노를 쏟으소서 (7) 그들이 야곱을 삼키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함이니이다 (8) 우리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긍휼로 우리를 속히 영접하소서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 (9)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10) 이방 나라들이 어찌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나이까 주의 종들이 피 흘림에 대한 복수를 우리의 목전에서 이방 나라에게 보여 주소서 (11) 갇힌 자의 탄식을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해진 자도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12)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 (13)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샬롬! 사랑하는 청파동교회 교우 여러분,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5년 6월 25일, 수요일입니다. 6.25 전쟁 발발 75주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방을 보다 더 안전하게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장마가 시작되었는데요, 항상 건강에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시편 79편 1절부터 13절까지입니다.
오늘의 시편은 하나님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여!’ 얼마나 다급했으면 처음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짖을까요?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을 부른 이후 원수들이 자신에게 어떤 나쁜 짓을 했는지 기록합니다. 대체 원수들은 시인에게 어떤 나쁜 짓을 벌인 것일까요? 시편 79편 1절부터 3절의 내용을 잠시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2)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3)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여러분! 지금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그려지십니까? 너무나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성전이 무너지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고,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짐승의 밥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피가 물처럼 흐르고 있지만, 그들의 시체를 매장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멸망 당할 정도의 끔찍한 고난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성전이 무너졌다는 표현은 오늘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에게 성전은 전부입니다.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고, 지구의 중심은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의 중심은 성전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성전이 무너진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 전 살펴보았던 시편 74편에서도 같은 내용이었고, 오늘의 본문 79편도 성전 파괴와 관련된 것입니다. 성전 파괴는 역사적으로 두 번(기원전 587년과 기원후 70년) 있었습니다. 아마도 본문은 기원전 587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사건을 배경으로 쓰인 것 같습니다.
또한, 시편 79편 3절에 나오는 것처럼 죽은 사람의 시체가 수습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현재 이스라엘의 상황이 얼마나 절망스러운지를 보여 줍니다. 살아남은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이 산 자의 도시가 아닌, 죽은 자의 도시가 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고난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시편 79편 4절은 전쟁 이후의 상황, 살아남은 이들의 고난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폐허 속에서도 살아남은 백성들은 육체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이웃 나라들로부터 비방과 조롱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주변 나라들로부터 위로와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 나라들로부터 조롱과 비웃음을 받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세상의 질서’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위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욱 조롱합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 더 힘들게 하는 존재가 바로 이 세상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형제 국가였던 에돔이 가장 앞장서서 이스라엘의 모습을 조롱하고 비웃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시편 79편 5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어느 때까지입니까? 왜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합니까? 대체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처럼 시인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지자, 하나님께 따지듯 질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떠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까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시편 79편의 저자인 아삽은 지금의 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운이 나빠서 이스라엘이 봉변을 겪거나 국제 정세를 따라서 어쩔 수 없는 이런 상황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우상숭배를 하며 하나님께 죄를 지었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고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것을 시인이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출애굽기 34장 6절)’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민수기 14장 18절)’ 이외에도 시편 86편 15절, 103편 8절, 145편 8절, 요나 4장 2절 등 수많은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시인이 알고 있었습니다. 마치 ‘사랑으로 매를 때리는 아버지의 눈에서 사랑의 마음을 읽어낸 아들’처럼 시인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고난 겪을 때의 자세입니다. 고난 겪을 때, “내가 왜 고난을 겪어야 하지? 대체 나의 잘못이 무엇이지?”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따질 것이 아니라, 겸손히 하나님께 엎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이어지는 시편 79편 6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시인의 세 가지 간구입니다. 첫 번째로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그치고, 대신 그것을 이방 민족에게 쏟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 이유는 저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짓밟고 그 거처를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시인은 ‘심판의 원인이 되었던 자신들의 죄를 기억하지 말아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이 모든 고난이 자신들의 잘못임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겸손히 간구하는 것입니다. 내 죄를 용서하옵소서. 내 죄를 기억하지 마옵소서. 내 죄를 부디 사하여 주옵소서.
마지막으로 시인은 ‘하나님께 처절한 복수를 의탁’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정의에 호소하며 그동안 인종 학살, 전쟁 포로의 강제 압송, 패전 국민에 대한 공개적인 모욕을 일삼았던 이방 민족에 대해서 보다 철저하고 완전한 보복을 하나님께서 대신해 주실 것을 간절하게 요청합니다. 시편 79편 12절에 나오는 ‘칠 배의 보복’이 바로 그것입니다. 히브리어 숫자 ‘칠’은 충족, 충만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시인은 하나님의 명예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보복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죄의 대가로 심판을 받게 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복되고, 저 이방인들이 멸망 당해야만 하나님의 명예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자신의 혈기와 감정에 휩싸여서 하나님께 보복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판결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모든 복수를 양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복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무리 억울하고 비참한 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께 모든 보복을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로마서 12장 19절)’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주실 것입니다. 머리털 하나까지 세시는 하나님께서, 냉수 한 그릇의 섬김도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공평하고 의로운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보복을 맡겨드립니다. 나의 억울함을 하나님께서 대신 풀어주실 것을 믿고 나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침묵하신 것처럼 저희도 침묵하겠습니다. 겸손히 하나님께 엎드리는 주의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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