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압니다. (시편 78편 56~72절)
(56) 그러나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여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며 (57) 그들의 조상들 같이 배반하고 거짓을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나가서 (58) 자기 산당들로 그의 노여움을 일으키며 그들의 조각한 우상들로 그를 진노하게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사람 가운데 세우신 장막 곧 실로의 성막을 떠나시고 (61) 그가 그의 능력을 포로에게 넘겨 주시며 그의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62) 그가 그의 소유 때문에 분내사 그의 백성을 칼에 넘기셨으니 (63) 그들의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그들의 처녀들은 혼인 노래를 들을 수 없었으며 (64) 그들의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그들의 과부들은 애곡도 하지 못하였도다 (65) 그 때에 주께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포도주를 마시고 고함치는 용사처럼 일어나사 (66) 그의 대적들을 쳐 물리쳐서 영원히 그들에게 욕되게 하셨도다 (67) 또 요셉의 장막을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68) 오직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며 (69) 그의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도다 (70)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71)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72)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샬롬! 사랑하는 청파동교회 교우 여러분,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5년 6월 24일, 화요일입니다. 잠시 장마가 소강상태를 맞이하다가 목요일부터 다시 시작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가 맑으나 흐리나 항상 우리 주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복된 백성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시편 78편 56절부터 72절까지입니다.
요즘 흔히 듣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같은 의미로,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었더니 오히려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양보했더니 고맙다고 하는 게 아니라 왜 더 도와주지 않았느냐며 오히려 원망하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군대에서도 독하고 무서운 선임병에게는 사람들이 알아서 잘 맞추고 충성하는데, 착하고 선한 선임병에게는 오히려 막 대하고 함부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까다롭고 불편한 사람에게는 조심스럽게 예의를 갖추지만, 편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무례하게 대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어찌 보면 인간의 본능 같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태도를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노예근성’입니다. 혹시라도 이런 방식으로 사회생활을 하거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즉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자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시편 78편 56~72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은망덕한 모습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 이후에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어제 본문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열 가지 재앙으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맛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대적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에도 그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시험하고 거역하는 모습을 반복했던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시편 78편 57절을 보시면, ‘속이는 활’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은 어리석고 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속이는 활이란 활줄이 이미 느슨해졌거나 활 자체가 뒤틀려 있어 궁수가 아무리 정확하게 조준해도 제대로 과녁에 맞힐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용할 수 없는 도구가 바로 속이는 활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결국 삶의 방향이 어긋나 있어 하나님을 실망하시게 하는 모습입니다. 특히 이어지는 말씀인 시편 78편 58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다른 곳에서 구원과 축복을 구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지금까지 함께하시고,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을 외면하고, 엉뚱한 곳에 가서 축복을 기대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입니다.
이어지는 시편 78편 59절부터 64절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입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으로 인해 하나님은 심히 노하시고, 그들에게 끔찍한 심판을 내리십니다. 법궤도 빼앗아 가시고 심지어는 성막에서도 떠나가십니다. 여러분, 심판 중에 가장 무서운 심판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떠나가시는 심판입니다. 아무리 성전이 크면 뭐 합니까? 아무리 교회가 크면 뭐 합니까? 하나님이 떠나시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멀쩡하게 생기고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떠난 교회, 하나님이 떠난 사람은 가장 큰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시편 78편 62절부터 64절은 ‘잔혹한 살육과 학살의 현장’을 묘사합니다. 모든 남성이 전쟁을 치르다가 죽고, 모든 여성은 그 죽음을 애통할 사이도 없이 모조리 학살되고 마는 그런 끔찍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우리 인간의 실체입니다.
시편 78편 65절과 66절에 나타난 하나님은 두 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직 잠에서 온전히 깨어나지 않은 하나님이고, 또 다른 하나는 포도주에 취한 용사 같은 하나님입니다. 모두 온전하지 않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께서 홀로 이방의 모든 민족을 물리치십니다. 잠에서 아직 깨지 않은 하나님이, 포도주에 잔뜩 취하신 하나님이,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너무나 손쉽게 물리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눈을 감고도 그들을 이기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법궤를 빼앗긴 이후 홀로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4장부터 6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이 하나님의 무능력 때문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보면, 제가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에브라임 지파와 유다 지파의 갈등이 여기에도 나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78편 6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의 장막과 에브라임 지파를 버리십니다. 이것은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6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와 시온산을 선택하십니다. 이것은 ‘남유다의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이 아니라 남유다를 구원하셨고 남유다의 다윗을 택하사 이스라엘을 통치하셨습니다. 71절을 보면, 목동 다윗의 모습이 나옵니다. 양치는 목동 다윗을 이끌어 내사 이스라엘을 통치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메시아를 상징하고, 또한 하나님의 통치를 상징합니다.
결론적으로 오늘의 본문 시편 78편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시편 78편은 역사시(歷史詩)입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 당한 것을 너희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것처럼 너희들은 멸망의 길을 걸어가지 말아라! 역사를 통해 교훈을 배우라! 말씀을 통해 지혜를 얻으라! 이것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은혜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그것을 권리로 생각합니다. 열 번 은혜를 받더라도 한번 부족하면 그것 때문에 시험에 들고 낙심합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배반하거나 섭섭하게 여기지 않으시는데, 우리는 수시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수시로 하나님께 섭섭함을 표현합니다. 목회자를 원망하고 교회를 원망하고 이웃을 원망합니다. 잘한 것은 나 때문이고 잘못된 것은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멸망 당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을 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말고 모든 상황에서 ‘내 탓이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 눈에 있는 들보는 보고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는 못 보게 되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은혜가 너무나 많아 오히려 그것을 권리가 여길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는 너무나 잘 보이지만, 내 눈에 있는 들보는 조금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나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겸손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고, 모든 상황에서 ‘내 탓이오’라고 말할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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